알라딘서재

책만 먹어도 살쪄요
  • 벨 그린: 위대한 사서
  • 마리 베네딕트.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 16,920원 (10%940)
  • 2026-08-10
  • : 165
아주 오래 전에 들은 말이지만 내가 오래 간직하고 있는 말이 있다.
˝넌 책 많이 읽는 것 치곤 많이 무식해.˝
이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모욕적이라던가 충격적이라서가 아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게, 적지 않게 읽는데도 어떻게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많은 거지?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 거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언젠간 알게 되겠지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도 참 나다운 그런 기억인데, 올해 만나게 된 ‘패싱‘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랬다. 물론 그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역시 마찬가지로 난 지식이 전무했다. 책을 읽으며 겨우 올해에 들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니 책이라도 안 읽었으면 이 무식함을 어쩔 뻔 했나?

그 시작은 필립로스의 [휴먼스테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콜먼은 유난히 피부가 하얀 흑인으로 사회적 성공을 위해 흑인이라는 정체성 대신 유대인 백인의 삶을 선택해 성공한다. 백인 아내를 만나 백인처럼 흰 아이들을 낳고 살았기에 그가 선택한 정체성은 유지되는 듯 하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언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흰 흑인이 있을 수 있지?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실제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흑인이 백인으로 행세하는 것을 ‘패싱‘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용어를 알게 된 덕분에 이 소설보다 훨씬 먼저 쓰여진 소설 [패싱]도 만나게 되었다.

[패싱]의 클레어는 콜먼과 달리 매우 불안해 보인다. 그녀는 백인의 특권을 욕망하여 흑인을 혐오하는 백인 남성과 결혼하며 철저히 백인으로 살아간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라 아이도 갖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며 살지만, 어느 날 고향 친구 아이린의 가족과 어울리며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이린의 삶도 흑인 집단 내에서만 안전할 뿐, 인종분리 정책이 펼쳐지는 세상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백인 행세를 하고 사는 클레어의 불안도 못지 않으니 마냥 클레어를 비난할 수 없었다. 화려하지만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벨그린 : 위대한 사서]를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패싱은 정말 너무 제한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겨우 책 2권으로 만난 게 전부니 당연하다. 벨은 본인이 원해서 패싱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기대와 가족의 행복 그리고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패싱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흑인 인권가인 아빠가 아닌 엄마의 선택을 따른 것이리라. 윌슨 대통령(아니 이 사람 민족 자결주의 외친 그 사람 아닌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이 인종분리법을 승인하기 전엔 흑인의 삶도 백인과 별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평등한 사회에서 능력을 펼치던 흑인들에게 갑작스러운 차별 정책과 혐오는 더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벨 그린] 까지 읽고 나니 [휴먼스테인]과 [패싱]도 새삼 더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휴먼스테인]의 콜먼이 자신의 정체성을 아내와 자식들에게까지 철저하게 숨긴 반면, 벨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아빠와 워싱턴의 친척들)의 이해를 받고 싶어했다. 콜먼보다 벨에게 패싱이 더 절실해 보였다. 그녀의 성공에 가족의 생존이 걸려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벨이 [패싱]의 클레어처럼 불안해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했지만, 클레어가 물질적인 특권을 추구한 반면 벨이 자아 실현을 추구했다는 점은 다르다. 클레어는 자신이 백인의 삶을 선택했지만 타인의 시선에 이끌려 가야 했던 반면, 벨은 비록 엄마의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해내고 싶었고,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했다. 그런 삶의 태도가 J.P. 모건 도서관의 초대 사서가 되도록 만든 가장 큰 힘이었을 것이다. 실로 대단한 여성이다. 화려했지만 비극적이진 않았다.

세 캐릭터 중 내 마음을 가장 움직인 사람이 누구인지와는 별개로, 벨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실제 그녀의 삶이 얼마나 이 소설과 유사할지는 모르지만,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이 약점이 되어 자신의 삶을 잠식하곤 하는데, 결코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는 벨의 결의가 느껴졌다. 차별받는 흑인이기 이전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온 인간의 존엄성이 느껴진달까? 그녀가 플리트 가문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던지! 필사본들을 사들이는 영민함과는 별개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까 밝힐까 고민하는 시간을 후대로 미룬 것도 정말 놀랍다. 나 같으면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신경쇠약도 심해질 것 같은데, 대담한 여성이다. 그런 여성이 내가 좋아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 사서라는 점이 괜히 으쓱하다.

아직도 나의 무식의 영역은 너무나 광활하지만, 올해는 ‘패싱‘을 알게 된 것으로 아주 조금은 그 영역을 좁혔기에 만족한다. 필립로스 그리고 지금 읽는 이렌 네미롭스키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지식도 아주 조금 쌓아가고 있다. 그래도 오래 전의 저 말은 죽을 때까지 내게 기억될 것 같다. 기억력이 미천하여 금방 까먹기 때문인데, 그래도 저 말은 안 잊으니 내 기억력의 기준을 모르겠다. 아무튼 기억력의 보완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