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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책
  • 기혁
  • 11,700원 (10%650)
  • 2026-01-05
  • : 1,445

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교유서가 시집 그 네 번째.

기혁 시인의 시집 제목은, 『소설책』이다.


​문학평론가 조강석 역시 해설 「레이어드 모노포니」에서 형식과 장르를 교란시키는 이 시집 『소설책』의 특성에 대해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일전에 한 시인이 '소설을 쓰자'라는 표제로 시집을 출간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시집의 제목이 '소설책'인 경우는 대단히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3부로 구성된 이 시집의 부제목들을 뜯어보며, 평론가는 기혁 시인이 말하는 소설이라는 기표에 대해 살펴본다.


​'현실이 상상력을 초과하여 말이 재현적 표상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P.183, 「레이어드 모노포니」)'. 인터넷에서 자주 보던 표현으로 말해보자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는 말이다. 시인은 왜 시집의 제목을 『소설책』으로 했을까. 기혁 시인은 부록으로 꽂아둔 편지에 이렇게 말한다.


​''12·3 내란'을 비롯해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소설보다 더 진짜처럼 버티고 있는 세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를 쓸 순 없었'다고. ''누가 무엇을 쓴다'는 문장에서 '누가'의 자리 혹은 '무엇'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로 쓰인 시편들이 바로 『소설책』'이라고.


​평론가의 정확한 평론이나 시인의 말도 좋지만, 오점투성이라도 개인적 감상을 조금 주절거리고 싶다. 삶과 삶을 사는 인간이 있기에 텍스트나 플롯은 태어난다. 내겐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 같기도 하다.


​12·3 내란처럼 소설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듯 개인적이고 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내게도 벌어진다. 책을 읽지 않았던 때에는 그런 사건 이후에 버티기 위하여 공허하고 무의미한 행위로 시간을 낭비했었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나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소설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며,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고, 분노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이 시집이 그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와 현실 사이에서 유영하는 읽는 사람. 『소설책』이라는 시집은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시'집이 아닐까.


/

(1) 구원은 언제나 예상 밖의 코트를 걸치고 찾아


​─ 「시인은 독사의 머리를 밟고」 中


​(2) 멈춰 선 이야기가 흘러도 흘러가지 않아도

우리에겐 대사가 없고

가야 할 미래만 있고


─ 「신파 소설」 中


​(3) 사람을 이롭게 하던 새로운 말들이

사람을 죽이는 더 새로운 말이 되어 돌아왔고

희망을 노래하던 말은 의미를 갈아입지도 못한 채

폐허의 경계선을 따라 몰려들었다 한다


─ 「숨은 신」 中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함께 바라보며 살아온 우리에게 기혁 시인의 시는 각자의 삶 속 순간을 비추는 영사기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선명하게. 내가 그랬듯 불가해한 시기를 지날 때마다 책을 찾던 독자라면 이 시집에서 많은 문장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를 하며 현재 발간된 총 4권의 교유서가 시집 중 3권을 읽었다. 이번 기혁 시인의 『소설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깊이 박혀 돌이켜보니 한 권 한 권 모두 다 제각각으로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교유서가 시집'은 지금 하는 이 서포터즈가 언젠가 끝나더라도, 미래에 여전히 내가 시를 평론가처럼 읽지 못하더라도 자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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