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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까치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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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 P.238,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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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종이 생기고, 개개인이 모여 부족을 이루고, 점점 커져 국가라는 형태가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한 사건이다. 무수히 많은 인간이 저마다의 지역에서 왕권을 잡고, 어떤 왕은 훌륭하게 백성을 이끄는 왕이 되는가 하면 어떤 왕은 권력에 취해 나쁜 통치자가 되고 만다.
아무리 지금이 정보화 시대라 하더라도 폭군은 여전히 등장하는데 약 400여 년 전이라면 지금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또 아무리 지금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라 하더라도 권력의 심기를 거스른 자가 응징을 당하는 모습이 여전히 보이는데 그 옛날이라면…….
작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 저지를 위해 국회로 달려가고 법을 발 빠르게 선포한 국회의원들의 모습과, 그 추운 날 무수히 많이 일어난 시위와, 탄핵과, 대통령 선거를 지나며 여러모로 낭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우리가 잘 뽑았더라면, 하고. 고명섭 작가의 『카이로스 극장』을 보면 그런 징조가 윤석열 당선 이전에도 숱하게 드러나있었다지만, 그럼에도 나라가 폭군(혹은 폭군적 시도를 하는 나쁜 통치자)의 손에 넘어가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을 느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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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자아도취와 어리석음, 광기, 잔인함, 무능, 피해 망상, 광포함을 가진 나쁘거나 미친 인간들은 늘 존재했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인간이 한 나라를 통째로 가질 수 있었을까? 이러한 폭군에 복종하며 생기는 비극적 손실들은 어떻고 또 이를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하버드 대학교 인문학 교수이자, 문학 작품을 다양한 맥락에서 분석하는 신 역사주의의 주창자인 스티븐 그린블랫은 '폭군'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시선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린블랫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폭군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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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작품을 쓰기 시작한 1590년대 초부터 펜을 내려놓을 때까지
매우 심란한 한 가지의 문제로 고심을 되풀이했다.
그 질문은 이러했다.
어떻게 한 나라 전체가 폭군tyrant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을까?
─ P.15, 「1. 비스듬한 시선」
그 고민에 따른 답은 극이라는, 우회된 이야기의 형식이 되었다. 극을 통해 맥베스나 리어왕, 리처드 3세, 코리올라누스라는 가상의 폭군 캐릭터를 보여주며 그들이 집권한다는 것의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하려 했으리라.
많은 이야기의 탄생 배경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대대로 직접적인 비판을 하기 어려웠다. 알레고리(Allegory), '다르게 말한다'는 뜻으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돌려 말하는 우화 따위가 대표적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의 영국 역시 표현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돌려 말하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조심성 때문만은 아니었고, 당대에 중요한 문제들을 숙고할 때 에둘러 생각하는 편이 더 좋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오늘날 가장 중요한 셰익스피어 연구자"라는 찬사를 받는 만큼 그린블랫의 분석은 이 우회성을 띠는 원전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통찰력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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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자존심, 고통을 주면서 즐거워하는 가학적 성향, 강박적인 지배 욕구(P.79),
큰 소리로 말하기 전에 자신의 의도가 실행되기를 기대하는 조급함(P.123),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 배신, 빈말, 수많은 자의 무고한 죽음(P.148).
셰익스피어의 극을 바탕으로 하는 그린블랫의 해석을 읽다 보면 오늘날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갑질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라의 왕은 되지 못했을지라도 각자의 집단 내에서 기어코 발생하고 마는 폭군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극작가요, 그의 작품은 여전히 읽혀야 할 고전인 것은 어떤 인간 부류의 특징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저자의 텍스트를 파고드는 집요함도 배울 수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을 보는 시선도 더 넓힐 수 있었던 책. 당신 주변에도 폭군과 같은 미친 인간이 있다면, 이 책과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