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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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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술도 없이 열에 들뜬 낙서 말고
차갑고 차분하고 건조한 시를 쓸거야 그럴 거야
─ 「기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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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표지만큼
제목만큼
차갑고 차분하고 건조한 시를 쓸 거라는 시 속의 선언만큼
시집은 적적[赤赤]하고 적적[寂寂]다
원성은 시인은 시집 『비극의 재료』에서
피를 흘리며 죽거나, 죽어가거나, 소외된 것들, 지나간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차갑고 차분하고 건조한 시의 언어로 그려지므로 죽음과 고통은 일시적인 소모품,
살아남은 사람들이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잠깐 언급되는 것으로 전락한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던 정현종 시인의 오래된 시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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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정지한 새 한 마리도
대화에서는 오브제다
소비되고 낭비되고 마침내 치워진다
─ 「오브제」
산산조각 난 접시, 도로에서 죽어가는 날개가 부러진 새, 그에 대해 이야기할 뿐인 사람들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인스타그램에서 저마다 대서특필을 한다
단색 배경에 상업적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폰트로 정보만 간단히 쓴 누군가의 비극
하지만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아래로 쓸기만 하면 금세 사라져 버리는
인터넷이 세상 모든 정보를 가져오고 SNS로 모두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이 시대에서
그 한 생명의 죽음은 몇 초의 화젯거리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우회해서 그려낸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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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사람과
물가를 걷는 사람에게
보이는 풍경은 다르겠지
…
제3의 풍경을 보는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풍덩 뛰어든다
불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소방관처럼
─ 「신비는 물을 좋아한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나 큰 소리로 다 같이 외쳐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그 고통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그렇구나 물에 빠졌구나 죽었구나 고통스럽구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시를 읽어도 그렇구나 하지만 그 그렇구나가 목에 박힌 가시처럼 따갑고 아프다
내 자리가 소방관이나 풍덩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버렸으니까
나는 왜 소방관이 되지 못하는지
손을 잡지 않은 0과 1, 그 사이에 함께 걸으며 서슬 퍼런 칼날에 옆모습을 베이며 걷는 북처럼
함께 한다는 것은 고통임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시 속에서 변명만 찾아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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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서평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사실 맨 뒤에 선우은실 문학평론가의 좋은 해설이 담겨있다
그런 관계로 내 감상만 주저리주저리...
책에 워낙 무언가 낙서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살면서 처음 교환 독서란 걸 해봤다
누가 쓰셨는지를 모르겠다
책에 낙서를 하는 걸 싫어했지만 이런 같은 책을 읽고 남긴 흔적은 좋다는 걸 처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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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에서는 사랑이 끝나지 않는다
시작하기만 한다 타임머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사랑은 재난이다
산불, 나 아닌 타인이 저지르고 도망간 것
…
죽지 않고 태어나기만 하는
감정들이 있다
오래 끝나지 않는 건 장르가 된다
이런 장르도 있다
─ 「재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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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티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붉은 와인이 가득찬 잔을 들고
그런데 내 그림자만이 화려했다
그림자가 화려해질 수 있는 방법은
구멍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빛이 새는 구멍, 비밀을 함구하지 못하는 구멍,
침묵을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구멍
─ 「그림자,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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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쓴 문장이 무한확장해서
네가 쓴 문장을 안는 모습을 지켜본다
거미줄 모양으로 안간힘으로 뻗어나가는 문장이
네가 한밤중에 적어놓은 문장을 포옹한다 흔들린다
투명한 물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 「안긴 문장과 안은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