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fragment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5만 부 기...
  • 패트릭 브링리
  • 16,650원 (10%920)
  • 2025-09-25
  • : 17,875

본 서평은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가 지질학적 시간이나 천문 공간을 대할 때처럼 노력한다면 이 엄청나게 방대한 인류의 계보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그 현실을 잊고 만다. 우리가 언제든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박물관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가슴이 점점 벅차오른다.

─ P.91-92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 P.172


​동료 경비원이나 관람객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는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 P.197


​이제 이런 순간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를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 P.262



2008년 6월, 패트릭 브링리의 형 톰이 죽었다.

원인은 암이었다.

원래라면 패트릭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에 톰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는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특별했던 가족 형을 잃은 그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거나, 어떤 일에 매달리거나, 할 수 없었다.

아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숨어버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

이미 한국에서는 스테디셀러 반열에 든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25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으로 또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25만 부 판매를 기념하여 제작된 이번 개정판은 초판과 본문의 모든 내용은 동일하나, 167점이나 되는 예술 작품의 이미지와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QR코드가 수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 수가 5150만 명이라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야말로 읽어볼 때가 아닐까.


​책은 친애하는 형을 잃은 한 남자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단순한 일을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일을 하며 쓴 에세이다.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곳으로, 이곳에는 옛 거장의 회화부터 그리스, 로마, 프랑스, 영국, 아시아까지 아우르는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경비원의 근무지는 몇 달 주기로 바뀐다.


저자 역시 10년간의 근무 기간 동안 전시실을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다. 그는 그곳에 근무하며 특정 구역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의 작품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며 홀로 무언가 떠올리기도 하고, 살아 숨 쉬는 사람들과 짧은 교류로 다시 세상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는 격려의 리듬을 느끼기도 한다. 옛 거장 전시관에 있는 티션의 <남자의 초상>을 보며 생전 형의 모습들을 떠올린다. 특별 사진전 구역에서 근무를 할 때 현실의 사람들 개개인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슬람 전시관의 양탄자를 들여다보며 세상이 어떻게 직조되어 있는지를 그 은유를 읽어낸다.


​─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한국어판 특별 서문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왜 이토록 큰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으며, 거기에 따른 답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질문에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조심스럽게 '이동진 평론가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겠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유한한 생명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지닌 인간이 창조해낸 영속적인 작품으로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을 기록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 준다.

─ P.330


​책 가장 마지막에 있는 문장이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 일을 하며 많은 예술품을 마주하고, 관람객이나 경비원과 교류하며 느낀 것들을 적기도 했지만, 죽은 형 톰과의 추억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미술관의 예술품처럼은 아니더라도 글이라는 형태로 패트릭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 형이 살아있는 순간을 남기려 한 게 아닐까 하며.

우리가 지질학적 시간이나 천문 공간을 대할 때처럼 노력한다면 이 엄청나게 방대한 인류의 계보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그 현실을 잊고 만다. 우리가 언제든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박물관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가슴이 점점 벅차오른다.- P91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P172
​동료 경비원이나 관람객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는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P197
​이제 이런 순간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를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P262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을 기록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 준다.- P330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