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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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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작가는 다음 사건 이전까지는 스스로를 그저 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의 한순간 불현듯 다른 누군가로부터 경멸이나 두려움이 담긴 시선을 받게 된다. 이 순간 나는 스스로를 더는 '정상적'이지 않으며 무엇인가 다른 존재, 즉 흑인으로 보게 된다. 이 순간부터 미국 흑인 자서전 작가는 이중적 시각과 싸워 나간다. 백인 자서전 작가처럼, 흑인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책 속에서 창조해 내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타인들의 적대적인 시선을 통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흑인성은 그들의 정체성인 동시에 비극적인 운명이며 "삶을 처방하고 운명 짓는 조건"이다.
─ 『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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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류의 인기가 부상함에 따라 많은 인종과 외국인을 쉽게 마주칠 수 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 내 주위에, 내가 아는 외국인은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지자체에서 다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한국인은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보다 깊게 교류하며 지내겠지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는 방법 중에는 그들만의 삶, 그들만이 겪는 고통을 미리 공부해 보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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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존재로 편히 있을 수 없는 공포
미국 남부 출신 흑인 작가, 키에스 레이먼은 어머니를 청자로 하는 회고록의 형식으로 자신의 삶 그리고 미국인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까요? 키에스 레이먼의 『헤비』는 흥미로움보다는 의무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표지와 띠지, 약간의 정보로 가볍고 낭만적인 회고록은 아님을 짐작했지만, 책 속에는 한 미국인 흑인 남성의 삶보다 더 거대하고 묵직한 현실이 담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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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걸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고통이 아프다고 말하면 싫어하는
폭력적인 인간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이혼 가정, 그리고 어머니에 의한 폭력, 조숙할 수밖에 없고 건강할 수 없는 환경, 인종 간의 보이지 않는 계급,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겪은 일들을 그려냅니다. 정확하고 솔직하게 쓰는 동안 과거의 트라우마를 수없이 마주했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몸과 폭력에 대한 기록이지요. 미성년 아이가 겪기에는 열악한 환경에 읽는 내내 당황스러웠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어머니의 모습에 역시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많은 독자들도 똑같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양육 방식이 너무하다고 꼬집고 싶을 테지요.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미국 사회에 감도는 더 거대한 인종차별의 분위기를 서서히 알아채는 순간 그의 가정 내에서 벌어졌던 폭력, 그리고 어머니가 왜 그토록 완벽한 글쓰기를 하도록 집착했는지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의 어머니를 향한 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자신이 겪은 차별과 폭력의 흔적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좋겠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어 하지 고통스러워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한치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써야 했던 건, 타의에 의한 불행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겪지 않도록 함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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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님은 『교양 고전 독서』의 서문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몇 가지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답들 중 하나로 '세계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지닌 사람'을 꼽죠. 그러면서 매해 낯선 문화를 다룬 책을 꼭 한 권씩 소개하고 계시는데, 키에스 레이먼의 『헤비』는 비록 그 리스트에는 없지만 이 역시 낯선 문화와 세계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결코 겪을 수 없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피부색 또는 성별 때문에 받는 필연적인 고통을 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책은 그저 어느 한 흑인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선을 그어버리기에는 모든 인간이 인종을 막론하고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계에서는 잘 살기 위해 많은 부가 제일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누군가를 존중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이러한 고민의 한 가운데에 서계시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