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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주제와 관심이 가는 기고문이 있어서 시험 삼아 구매해 봤습니다.
계간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안정을 주고 따뜻한 느낌인데 제목에 걸맞은 기고문들이 많이 있었어요.
책으로의 도피라는 부제를 보고 산 건데 요가나 여행, 유스트레스 관리법, 사랑과 상실 이런 글들도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전혀 관심 없을 이야기였는데, 읽다 보니 또 흥미도 생기고 책에서 제안하는 요가 동작은 한 번 해볼 마음도 들더라고요.
외국에서 쓰인 글을 번역해서 만든 계간지라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제공하는 정보 중에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요.(예를 들면 중간에 참고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 발행한 건 4권 중 1권뿐이었어요.)
개인적인 성향과는 달라서 정기구독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이런 치유 문화적 성향을 좋아하신다면 이 계간지가 정말 잘 맞으실 분도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에 또 흥미로운 주제가 보이면 구매해서 읽어볼 마음은 충분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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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트레스를 이해하려면 해당 이벤트와 관련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든 경험을 인지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개인적 관련성을 살펴보는 게 좋다. 이벤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벤트로 인한 신체적·현실적 스트레스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일반적인 스트레스 증세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놓는 것이다. 부정적 상황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한 어려움(예: 수면 장애, 질병, 피로)은 긍정적 상황에서 생기는 유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어려움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미리 알고 계획한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에 휩싸일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 두는 것도 유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축복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순간,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는 자신을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긍정적인 이벤트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사실이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좋다", "나쁘다", "고맙다", "고맙지 않다" 등의 딱지를 붙이지 않고 유스트레스 자체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 P.11
결핍needy ─ 이 단어에 함축된 의미는 썩 좋지 않다. 냉정하고 참을성이 강한 상대에게 관심과 확신을 요구하는 것 같은 관계의 불균형이 느껴진다. 또한 동정받아야 하거나 심지어 피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물론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부족한 것이 있겠지만, 이들을 결핍이란 단어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에는 비하 혹은 모욕의 의미가 있는 한편, 사람들은 이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그런 범주에 속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P.16
욕구가 있다는 것은 나약함이 아닌 인간다움의 증거다.
─ 다니엘 버녹
"친구는 가족의 실수에 대한 신God의 사과 방식이다."
─ P.76
사랑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사랑은 불멸이기에……
─ 에밀리 디킨슨
죽음을 대하는 태도
─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해 알아본다.
○ 고인에게 편지를 쓴다.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 추억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왜 그리운지 적는다. 마음 가는 대로 풀어쓴다. (또는 아래의 내용을 참조해도 좋다.)
○ 오래된 사진을 모으고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인화하여 앨범을 만들어 고인과 함께한 시간을 기념한다.
○ 자신의 애도 욕구를 인정하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지낸다.
○ 슬픔은 선형적이지 않다. 슬픔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왔다갔다하며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이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애도 과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애도에는 '해야만 하는 것'이 없다. 고인이 특별했던 것처럼 모든 애도 과정도 특별하다.
기록하며 기억하기
─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아래 질문을 참조한다.
○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
○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충격을 받은 이유는?
○ 살아 있다면 함께 하고 싶은 것은?
○ 아쉬운 것은?
○ 앞으로도 계속 고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이유는?
에세이의 기원
'에세이'는 '시도' 또는 '해보기'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 '에세essai’에서 유래한다. 이 장르의 초기 형태는 고대 그리스로까지 거슬리 올라가지만, ‘에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는 미셸 드 몽테뉴었다. 부유한 공정 신하였던 그는 공직 은퇴를 기념할 목적으로, 1571년 38세의 나이에 자신의 서재에 라틴어 문구를 새기면서 일이나 의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그런 다음 프랑스 남서부 자신의 영지에 있는 건물 정원의 탑으로 올라가 책과 글쓰기에 몰두했다. 몽테뉴의 접근법은 고대인에게서 인용한 구절 “자신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유로운 사고를 시작한 이 귀족은 하나의 탐색에 돌입했다. 글쓰기를 자기 탐구의 도구로 삼아 여생을 사는 최고의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서사시에서 일상에 이르기까지, 몽테뉴의 정신적 탐욕으로부터 제외된 것은 없었다. 그는 전쟁, 냄새, 엄지손가락, 식인종, 술기운. 괴물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모든 것에 관해 썼다. 107편에 이르는 그의 에세이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긴 주제와 관념에 관한 생각을 전달하려는 유쾌하고 진정한 시도였다. 학구열을 지닌 교양인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언가를 모를 때, 따분할 때, 또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 두려움 없이 이를 드러냈다. 글쓰기를 향한 이 정직하고 숨김없는 접근 방식은 당시 혁명적이었고 큰 영향력을 미쳤다. 다른 작가들은 이를 '날 수 있는 허가'로 받아들였고 에세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19세기 초에 이르러 에세이스트는 가장 유명한 작가군에 속했다. 영국에서 윌리엄 해즐릿만큼 존경받는 작가는 없었는데, 그의 작품은 1805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그는 예술, 문학, 정치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엄청난 명성을 쌓았다. 눈부신 문체로, 그는 정치인과 유명인사에 대한 혹독한 비평을 발표했다. 전기 작가이자 저명한 학자 조나단 베이트가 '최고의 영어 산문 작가'로 평가한 해즐릿의 초기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감동을 주지만, 몽테뉴에게 빚졌음을 인정한 후기의 개인적 에세이가 최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몽테뉴의 영향력은 20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그의 헌신적인 추종자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혼란스럽고 다채롭고 불완전한 영혼의 전체 형상과 무게, 색상, 둘레를 묘사하고, 자신의 별난 생각을 따르는, 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 이 예술은 바로 오직 한 사람, 몽테뉴만의 것이다.”
─ P.88
그냥 사람다워질 것
개인 에세이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작가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한 것 이상의 아이디어를 찾고 연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에세이스트는 자신이 쏟은 노고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젠이 생각하기로, 그것은 보편적이지만 과소평가 된 글감을 값지게 활용하는 것이다. "느끼는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 듣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의 학문 체계는 사고를 우선시하여, 감정은 여성스럽거나 히스테리적이거나 창피한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그냥 좋은 인간이 되어보는 것이 어때?'라고 묻는다. 에세이를 쓰는 연습은 세상에서 사람이 되는 연습과 아주 비슷하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한계, 즉 자신의 능력 혹은 사고의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에세이 쓰기는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 노력이다."
─ P.92
결핍needy ─ 이 단어에 함축된 의미는 썩 좋지 않다. 냉정하고 참을성이 강한 상대에게 관심과 확신을 요구하는 것 같은 관계의 불균형이 느껴진다. 또한 동정받아야 하거나 심지어 피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물론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부족한 것이 있겠지만, 이들을 결핍이란 단어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에는 비하 혹은 모욕의 의미가 있는 한편, 사람들은 이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그런 범주에 속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P16
느끼는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 듣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의 학문 체계는 사고를 우선시하여, 감정은 여성스럽거나 히스테리적이거나 창피한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그냥 좋은 인간이 되어보는 것이 어때?‘라고 묻는다. 에세이를 쓰는 연습은 세상에서 사람이 되는 연습과 아주 비슷하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한계, 즉 자신의 능력 혹은 사고의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에세이 쓰기는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 노력이다.-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