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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신입생 때는 뜨겁게 불타올랐던 열정이 사그라들고, 너무 무기력해져서 등교까지 거부했던 적이 있다. 그저 무기력했다기보다는, 두려움, 혼란, 우울,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과제 수행에 장애가 컸으며, 결과적으로는 자퇴로 이어졌다. 모든 것이 내 선택이었다. 등교에 두려움을 느낀 것도, 과제를 엉망으로 한 것도, 대학을 자퇴한 것도, 뒤따라오는 대인기피, 우울증, 자살시도 모두 내 결정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오롯이 내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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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기력한 이유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데에는 성격이나 유전 영향도 있다고 한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사람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섹스하는 등의 개인적 쾌락보다는 존중받는 것이 행복에 더 중요하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과 요인이 있다.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주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어느 것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기력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두에서 무기력에 비롯한 모든 결정들이 내 탓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원인이 된 적도 있다. 다만 지금 그것들을 탓해봤자 소용없고, 과거는 변하지 않기에 문제 삼고 싶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 많은 요소들로 얽혀있기에, 우리가 '무기력'이라는 감정을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가 어렵다. 사람 때문에 무기력함을 느낄 수도, 바뀌지 않는 어려운 환경에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이 사회가, 정권이나 정책이, 인접한 국가가 무기력을 유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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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이 복합적인 요인들 속에서, 만약 무력감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당신은 기꺼이 하겠는가?
브릿 프랭크의 『무기력의 심리학』은 무력감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그 자신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10장에 걸쳐 무기력의 원인을 나에게로 하는 화살을 꺾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처방전을 제시해 준다. 그녀 역시 20대에 심각한 무기력함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를 했음을 고백한다. 이를 바탕으로 무기력을 느끼는 많은 이들이 그 원인을 '내 탓'으로 하는 부분부터 바로잡기 위해 '서문,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로 시작한다.
무조건적인 남 탓이 좋지 않듯, 무조건적인 내 탓 역시 좋지 못하다. 34쪽에서 저자는 불안감에 대한 다섯 가지 미신을 보여준다. 우리의 불안감이 질병이고, 화학적 불균형이고, 유전의 문제고, 정신 장애고, 정신적으로 약하다는 신호가 맞는다면, 우리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원인이 모두 나에게 있기 때문에 오로지 죽음을 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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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 심리학이 행복을 위해서 사회를 바꿀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가짐만을 바꾸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행복 산업의 문제는 『무기력의 심리학』에서도 살짝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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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약, 웰니스wellness, 미美, 피트니스 산업은
불안감이 우리 탓이고 '자신을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견해에 기반한다.
자유, 즐거움, 큰 행복, 평화 등을 약속하는 광고는 우리에게 우리 밖에서 답을 찾으라고 속삭인다.
─ P.27, 『무기력의 심리학』, 브릿 프랭크
우리 삶은 엉킨 실타래처럼 모든 요인이 작용하고 있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수도 있다. 사회가 아닌 개인만을 바꾸라는 주류 심리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책은 내 마음가짐만을 바꾸라는 단순한 방법만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는다. 불안이나 무기력 같은 감정을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 나, 관계들, 그 속에서의 트라우마, 무기력으로 인한 행동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을 거친다. 독자가 이러한 과정을 담은 텍스트들을 따라가며, 장 말미마다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해낸다면 천천히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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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 『철학자의 걷기 수업』, 알베르트 키츨러
당신이 너무 무기력해서 작은 단계부터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책 한 권으로라도 시작해 보았으면 한다. 때론 우리 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원인이 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다음에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정신건강, 약, 웰니스wellness, 미美, 피트니스 산업은 불안감이 우리 탓이고 ‘자신을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견해에 기반한다. 자유, 즐거움, 큰 행복, 평화 등을 약속하는 광고는 우리에게 우리 밖에서 답을 찾으라고 속삭인다.-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