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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윌리엄 해즐릿
  • 15,030원 (10%830)
  • 2024-08-30
  • : 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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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은 모든 시대에 존재해왔다.


─ 라 로슈푸코


인플루엔셜 출판사의 『걷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해 한 번 글이 소개된 바 있는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가 아티초크에서 출간되었다. 『걷기의 즐거움』에서 해즐릿은 동반자 없이 홀로 떠나는 여행을 예찬하며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고집불통'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그 답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해서는 강하게 거부하며 오직 '홀로'를 고집하고는 있지만, 이런 즐거움이라면 모두가 이해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에서는 그런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기대하지 말기를.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혐오의 즐거움‘이라니, 가히 자극적인 제목이 아닐 수가 없다. 제목이 주는 부도덕함에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으리라. 누구나 한 번쯤 혐오의 즐거움을 느껴보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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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억압하는 본성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어느 천재적 인간이 쓴 새로운 걸작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이 멸시했던 온갖 성찰이나 억제했던 기쁨과 슬픔

혹은 무시했던 많은 감정들을 발견하면서 기뻐하는데,

책을 통해 그런 감정들을 알아보면서 그 가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갇힌 여인』 中


18세기 말에 태어난 작가가 250여 년 전에 쓴 글을 읽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독자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오래된 글에 공감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책─정확히 말하자면 고전이나 걸작─의 이러한 성질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독서에서의 이러한 발견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즐릿의 에세이는 책을 통한 이러한 발견에서 '기쁨'과 같은 쾌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해즐릿은 신랄한 문체를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과감하게 들추고 지적한다. 혐오, 질투, 무지, 집착과 욕심…. 수 세기가 지났지만 인간의 이러한 어두운 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표제작인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만으로도 모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인터넷이 대중들에게 보급되면서 혐오의 범위가 확장되고, 혐오의 수단과 방법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으니까.


과거에도 인간은 그랬으니 이 책이 쓰였을 터이고, 지금도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책을 통해 확인하며 공감하게 되니, 미래에도 우리는 변하지 않고 또 그러겠지라는 씁쓸함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을 감돈다. 그가 납득하고 싶었던 '세상사의 이치'는 여전히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다.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니라 글을 읽을 줄 아는 원숭이나 외계 종족이었다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글을 읽으며 난 인생에서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다는 등의 고상한 척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때문에 해즐릿의 지적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소설가 장강명은 추천사에서 혐오는 나쁜 것이라고만 외치는 이 시대에 혐오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해즐릿의 에세이가 참 반가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웃기게도 인간은 때론 이유 없이, 혹은 부조리한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기도 한다. 모든 이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2022)』의 심은석 판사(김혜수 扮)가 소년범을 혐오하는 것처럼 '이유 있는 혐오'를 한다면 모를까.


부조리한 혐오는 일방적인 폭력의 형태로 드러난다. 학교폭력은 늘 있는 문제고, 성별이, 외모가, 신체가, 인종이 달라서 등과 같은 이유로 혐오를 당하고 상처받는 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유가 없거나, 부조리하게 혐오를 당해보았다면 혐오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에나 겨우 털어놓을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부조리한 혐오를 당해본 이의 괜한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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