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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창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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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교육과정을 거치며 '공부'의 의미가 내 안에서 많이 변질된 것 같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보다는 '그냥 남들이 하니까' 공부를 했다.
주변의 어른들도 '나의 쓰임을 위한 공부'들은 알려주지만,
'나를 위한 공부'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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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공부'라 하면 아무래도 철학이지 않을까. 오래전 남겨진 철학적 문장들은 나를 깊게 생각하게 만들고 말과 행동을 수정시킨다.
최근 들어 출판업계에 흐르는 철학 유행의 큰 줄기는 대체로 '서양 철학'에 기반을 둔다.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이젠 거의 뭐 옆집 아저씨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친숙하고, 그 뒤를 이어 키르케고르가, 괴테가, 아들러가……. 그렇게 서양철학자들을 접하고 나면, 자연스레 동양철학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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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선인들과 함께하는 무용[無用]한 공부
동양 선인들의 공부법을 다뤘던 책, 『선인들의 공부법』이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게' 개정되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동양 철학자 15명의 '공부'에 대한 명문장들을 소개하는데, 공자, 장자나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 익숙한 선인도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조금 생소했던 이름도 있었다.
선인들이 이야기하는 공부는 무엇일까? 우리는 같은 단어라도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새로 펴내며 쓴 글에서 박희병 선생님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공부'란 무엇인지 밝히며, '실용[實用]의 공부'가 아닌 '무용[無用]의 공부'의 쓰임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기 위한 공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는 공부 등만을 추구하고 있고, 이런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진리는 계속해서 대물림되고 있다. 나 역시 꽤 오랜 기간 실용적인 공부만을 해왔다. 대학 자퇴 이후, 문이과나 전공 등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지 않고 책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인들의 지혜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독서를 하며 행간을 읽어 내려고 정진하기,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정확하게 글로 나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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窮理多端, 所窮之事,
或値盤錯肯綮, 非力索可通, 或午性偶暗於此, 強以燭破,
且當置此一事, 別就他事上窮得,
如是窮來窮去, 積累深熟, 自然心地漸明, 義理之實漸著目前.
時復拈起向之窮不得底, 細意紬繹, 與已窮得底道理, 參驗照勘, 不知不覺地, 竝前未窮底, 一時相發悟解,
是乃窮理之活法.
이치를 궁구함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궁구하고자 하는 일이 얽히고설켜 있어 힘써 탐색해도 알 수 없거나
자신의 천성이 그 일에 어두워서 억지로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우선 그 일은 내버려두고 따로 다른 일에 대해 궁구해야 한다.
이처럼 궁구하기를 계속하다 보면 자꾸 누적되고 익숙해져
자연히 마음이 점차 밝아지므로
이치의 실상이 차츰 눈앞에 드러나게 된다.
그때 다시 전에 궁구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고 연구하여
이미 궁구된 이치와 서로 관련시키고 비교해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에 알지 못했던 이치를 갑자기 깨치게 되니,
이것이 곧 이치를 궁구하는 활법[活法]이다.
─ P.104, 「이황 · 지금 당장 공부를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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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스스로의 자아마저 흔들리고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무용[無用]한 공부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98년에 처음 나온 책이 24년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박희병 선생님의 근심이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더욱 동양 선인들이 강조하는 '무용[無用]한 공부'의 가치를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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