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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펀트 헤드
  • 시라이 도모유키
  • 16,920원 (10%940)
  • 2024-10-18
  • : 14,967


본 서평은 내친구의서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 하나 때문에 당신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치자.

만약 여기서, 그 사건이 아예 벌어지지 않도록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약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그 약을 기꺼이 복용할 것인가?

정신과 의사 기사야마는 아내 기키와 슬하에 두 딸, 마후유와 아야카를 두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사야마의 속내는 묘하게 뒤틀려있었다. 배우인 아내의 전 스토커를 잡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별장 '불사관'에 가둬 강제로 ○○하기도 하고, 가족을 감시한 방송인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죽인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친 곤경에 처한 남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 대가로 남자와 함께 '콘셉트 호텔 가네샤'로...

그 일이 그에게는 화근이었다. 다음 날, 첫째 딸 마후유가 가족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고 집으로 데리고 온 남자가 하필 기사야마가 호텔로 데리고 갔던 남자였고, 그 남자는 기사야마와 있었던 추잡한 일을 숨기지 않고 모조리 말해버렸다.

"이런 행복한 생활, 꿈은 아닐까 몇 번이고 생각했어. 역시 진짜가 아니었네."

아내는 이 말을 남기고 두 딸과 함께 기사야마를 떠났다.

기사야마는 혼자가 되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

만약 당신이 기사야마의 입장이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의문의 약을 써서라도 이 균열을 막을 것인가?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는 추리·미스터리 소설 장르의 한 갈래인 '특수 설정'을 깔고 있다. '특수 설정'이란 비현실적인 설정 ─ 예를 들면 이름을 적으면 죽는 노트 등 ─ 이 있고, 그 설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장르를 일컫는다. '특수 설정' 장르를 아직 많이 접해보진 못한 탓에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어려운 단계지만, 『엘리펀트 헤드』는 아직 추리소설 초보자인 나에게 특수 설정 장르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작가의 발상이 놀라운 작품.

『엘리펀트 헤드』는 2022년에 개봉했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멀티버스', 그리고 '잔인함'이라는 면에서 많이 닮아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가정의 붕괴를 막으려 하지만, 그 의문의 약 탓에 생겨버린 또 다른 기사야마의 멀티버스들. 어떤 기사야마는 운이 좋아 붕괴되지 않았고, 어떤 기사야마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며, 어떤 기사야마는 붕괴는 일어났으나 잘 복원했다. 또, 어떤 기사야마는 병상 신세를 지게 된다. 이렇게 분열된 모든 기사야마들은 잠이 드는 순간 한곳에 모여서 대화할 수 있는데, 어느 날, 아내의 전 스토커인 '페페코'의 죽음으로 기사야마들은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된다.

한 세계에서 어떤 인물이 죽으면, 다른 세계에서도 그 인물은 모두 죽는다는 것.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주변인들의 기괴한 죽음들.

과연 '어떤 시간선의 기사야마'가,

'어떻게' 죽인 걸까?

『엘리펀트 헤드』의 특수 설정과 그 설정 위에 세워진 트릭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노골적인 묘사와 잔인함, 비윤리적인 이야기에 아무에게나 추천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얼마 전에 읽었던, 2003년에 '19세 미만 구독불가', 이른바 빨간 딱지가 붙은 소설책보다도 더 심했다. 추리·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겐 분명 엄청난 충격을 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니, 그만큼의 대가는 지불해야 할 작품이다. 이런 탓에 아무에게나 감히 권하기보다는, 이런 쪽에 익숙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각오와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만약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면, 시라이 도모유키의 전작인, 『명탐정의 제물』과 『명탐정의 창자』를 읽어보고 결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이유는 이 두 작품에서 작가의 스타일이 느껴지기 때문. 『명탐정의 제물』에서는 '다중 추리'와 '모든 것이 복선'이라는 특징이, 『명탐정의 창자』에서는 '특수 설정'이 두드러진다. 조금 순한 맛의 시라이 도모유키 월드를 경험해 보고, 좋았다면 그때에는 『엘리펀트 헤드』를 과감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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