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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 콜렉터
  • 이우일
  • 11,700원 (10%650)
  • 2011-11-22
  • : 337

그동안 이우일씨의 에세이를 통해 그가 모으는 엄청난 것들의 목록을 대강은 알고 있다. 그림책 사진집 만화책 소설책 음반 장난감 그림 공구 등 분야도 다양한 이우일씨의 구매욕구의 맹렬함도 안다. 아내 선현경씨의 책을 통해서도 남편의 콜렉터 기질에 대한 한탄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집에 사는게 아니라 물건이 점령한 곳 같은데 오죽하면 이삿짐 직원이 어머어마한 견적을 보고 회장님이 이사간다고 오해를 했을까. 정리가 되어 있지도 않아 같은 책을 두 권 사거나 잘 찾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대충 짐작이 간다. 그림으로 소개 된 이우일씨의 작업실은 발 디딜 곳 없이 빼곡히 물건들이 들어차 있는데, 벽에는 사진과 포스트잇 등으로 도배가 되어 정말 빽빽하다. 컬러가 아님에도 엄청난 광경이었는데 만약 사진이었으면 어질어질 했을 것 같다. 이 작업실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물건 찾기도 어려운 산만한 환경인데 이런 곳에서 작업이 되다니!!! 이 책을 엄마에게 필히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 본다면 내 방이 돼지우리라고 하지 못하겠지? 우리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이구, 머리 아프고 정신 사납다" 고 하시지 않겠지.

 

다 큰 어른이 장난감 피규어를 사 모으고 국내도 모자라 이베이까지 기웃거리며 하루에도 몇개의 택배상자를 받는다면 쯧쯧 혀를 차게 될지도 모르겠다. 짜투리 공간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한 그 모습에 언제 철들래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있는 모습에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생활에 실용적인걸 산다면 괜찮을 텐데, 솔직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을 사느라 카드를 긁는다면 잔소리를 안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우일씨가 모으는것들이 '쓸모없는 것'들일까? 일단 낸 눈엔 수집품들이 하나같이 부럽고 재미있고 신기하고 공감이 되는 것들이었다. 나야 장난감 피규어에 관심이 덜한지라 어린시절에 산 조악한 장난감을 아직까지 갖고 있고 좋아라하진 않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아니겠는가. 자기가 좋아하고 모으면서 행복하다는데, 쓸모없는걸 모으는게 아니라 추억을 모은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아내 입장에선 좀, 아니 많이 과한 남편의 구매욕때문에 머리 아플 일은 많겠지만 나름 건전한 취미생활(?)이니 너그럽게 생각해 주십쇼....라는 말을 하진 못하겠다.(;;) 내가 이우일씨같은 '콜렉터'와 결혼 한다면, 장난감과 책 등을 마구 사 모아 집안을 점령한다면 "우리 잠시 건전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볼까?" 라고 할 것 같다. 일단 펑펑 새나가는 돈도 문제겠지만, 인테리어 따윈 개나 줘야 하는 상황에 속상할 것이다.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남편의 사랑하는 수집품들이 들어 찰테고, 물건들끼리 번식을 하는건지 자꾸만 수가 불어나니 앉을 공간도 사라질거야. 으아악!!!

 

이우일씨도 아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는 있단다. 쓸모없는 걸 버리기 위해 방 정리도 한다는데 결국 버려지는 건 종이쪼가리 몇개 뿐이지만. 그런데 그 상황이 백프로 이해된다. 나도 엄마가 참다참다 못해 내지르는 "정리 좀 해!"에 큰 결심을 하고 치우는데 청소시간보다 "이게 여기 있었네?" 라는 발견과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감상의 시간만 가지다 결국 버리는 건 0.0001%도 안되기 때문이다. 엄마 눈엔 버릴 물건이 산더미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는 하나같이 소중한 자식들이요 추억인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말도 안하고 내 아가들을 버리려고 할 땐 다신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이우일씨는 어머니의 성화에 어렵게 모은 영화잡지를 헌책방에 헐값에 넘겼고, 신혼여행 중엔 어머니가 레코드를 버려서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단다. 이야기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정말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했을까.

 

자신만의 보물상자에 동생의 물건까지 넣어뒀던 욕심쟁이 어린이는 이제 책, 카메라, 음반, 디비디, 장난감 등 가리지 않고 사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의 수집품들 중엔 영화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음반이 있을 정도로 광대하다.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파고드는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얇게 파고드는 것 같은데, 덕분에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여행하면서 모은 재미있는 장난감들과 각각의 물건들에 담긴 추억 보따리를 보고 들으니 이우일씨의 딸은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엄청난 것들을 물려받을테니까. 앞으로도 이우일씨는 사고 또 살테니 그 수는 엄청나겠지! 아..설마 너무 많이 사는 아빠에게 질려서 "저는 무소유의 삶을 살거예요"라고 하진 않겠지.

 

그나저나 죽을때 걱정이긴 할 것 같다. 난 엄마에게 "무덤까지 갖고 갈거니까 염려마세요"라는 말로 안심(?)시킨 후 신나게 결제를 하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고...정말 아까워서 눈 감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있으면 물려주면 되지만 만약 거부한다면? 물건도 별로 많지 않는 내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 근데 뭐 앞일까지 걱정하고 그러는가. 그저 지름신을 영접하는 그 순간을 즐기고, 상자를 뜯는 순간 눈이 부신 자태에 황홀해 하고,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하면 된다.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그 순간만 참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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