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내내, 한국 여성들의 삶이 동시에 떠올랐다. 한국에서 지금 진통을 앓고 있는 여러 여성에 관한 이슈들이 떠오르는 대목이 많았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피임약에 대한 챕터들이었다. 앞부분에서는 피임약 복용이 당연시되는 점과 프랑스 여성들이 섹스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스케치하는 듯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움이 사실은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서술이 이어진다.
1971년 4월 5일,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하게 기억될 ‘343명의 선언’이 있었다. 343명의 여성들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자발적으로 불법행위, 즉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고백한 것이다. 보부아르와 프랑수아즈 사강, 잔모로, 카트린 드뵈브,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1년 뒤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금지법 개정 요구에 대한 청원서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게재되었고, 1975년 보건 장관이었던 시몬 베유의 주도하에 낙태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프랑스 여성들이 현재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1970년대 여성들의 희생과 활약에 빚진 바가 크다. 그녀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지적인 우아함 뒤에는 이런 역사적 자부심이 배어 있다. 피임의 권리나 출산휴가 등 굵직한 사안들이 중요한 법안으로 다뤄지고 그 뒤 여성 인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 어느 한 세대의 희생 덕분일 것이다.”(74쪽)
한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위의 사안을 통해 생각해보자면 이렇다.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용기 있는 목소리들과, 여성들의 권리와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숙한 인식과 연대 의식,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실질적으로 삶과 가치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도 수정의 절차까지 마련되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것은 1975년, 우리나라는 여전히 낙태는 불법이며 임신과 낙태에 대한 모든 위험과 죄책감까지 모두 여성 혼자서 담당하고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이 잘못된 인식과, 여성의 몸을 둘러싼 췩취적 구조를 인식시키기 위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이 많아지는 지점이었다.
여성의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에 끔찍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여성들이 성적으로도 문란하기 짝이 없어질 것이고, 그렇게 사회가 급격히 타락할 것이며,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늘어나 사회구성원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되어 사회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 두려움과 공포에 근거한 의미없는 지레짐작 대신 프랑스 사회의 실례를 보고 사태를 파악하면 답이 나온다.
한 나라의 절반인 여성에게 온전한 권리를 갖게 되자,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개인들 간의 관계성의 역량을 최대한 구축하는 법을 터득했다. 프랑스인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곳이며 매력적인 사람들이라고 평가된다. 즉 그들은 모든 개인에게 권리를 줌으로써저마다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였고, 그 개인들은 "내밀함"을 조건으로 타인을 만나고 싶어하고, "각자의 공간을 배려"할 줄 아는 그들만의 문화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 나라에는 왕이 없다. 노동법과 조합이 튼튼한 이 사회에서는 사장은 나쁘면 안 된다. 그리고 관광객도, 손님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식당에 들어가서도 종업원과 먼저 눈이 마주친 후 인사하고, 그가 정해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이곳은 엄연히 그의 공간이기 때문이다.”(184쪽)
이들의 자유로운 인식은 아마도 팍스PACS(동거 인정 제도)제도들과 함께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사르코지의 전 대통령과 올랭드 전 대통령의 연애 스캔들을 받아들이는 프랑스인들의 태도를 보라. 사족이지만 연예인이나 공인의 연애나 불륜을 가지고 도덕성을 운운하는 것은 정상성에 대한 뒤틀린 집착 아닐까. 한 개인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듯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할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 개인들의 것이고 그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최대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해결을 위한 제도나 법률 장치도 엄연히 존재한다. 온 사회가 나서서 한 사람의 부도덕함을 손가락질하고, 과거를 파헤쳐 그 개인의 인간성을 말살시키려는데 혈안이 된 사회는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프랑스 여성들의 자유로움과 자부심이, 저자의 말대로 결혼 이후에도 거의 직업을 갖는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대신, 탁아시설에 맡기고 자신의 사회 생활을 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기에 그것 역시 가능했으리라.
“워킹맘이 대세인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물론 부부의 공동 양육과 육아 휴직, 탁아소 시스템 등의 복지제도 덕분이다. 육아 휴직과 남성의 공동 육아 책임을 당연하게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들이 계속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경우, 현재 아이가 한 명일 경우 출산 전후 총 16주 동안 급여의 100%를 받을 수 있는 출산휴가가 있다. 아이가 둘인 경우 26주까지, 쌍둥이인 경우엔 34주까지 출산휴가를 가질 수 있다. 이는 결혼의 유무와 상관없이, 미혼모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285쪽)
책을 읽고 난 후,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방종과 부도덕의 표출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는 한 사회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 개인의 자유의 보장은 사회의 가치관의 확장과 연관된다. 그 자유를 통해 누군가 억압받거나 고통스러워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범죄이다.
자유란, 기존 가치관에 균열을 주어, 다른 가치관을 가진 또 다른 개인이 그 사회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에는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동반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프랑스 여성들의 삶은, 자유에 대한 한 사회의 성숙한 인식의 결과이자 과정이 아니었을까.
내가 막연히 느꼈던 프랑스의 낭만은 자유와 책임과 가치관의 확장이라는 역사성을 지닌 것임을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접하게 되는 문제들과 그에 접근하는 방식 속에서 답답함을 자주 느낀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전반적인 인식 개선과 동시에 제도의 개선 용기 있는 목소리가 정말로 한 사회를 변모했음을 이 책을 통해 목격한 것 같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