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시들은 아름답게 부서져 있다.
부서진 것들이 시 속에서 영원이 될 것만 같다.
일그러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시는 징검다리, 시간을 건너게 해준다.
시인들이 오래 살아야 할텐데...
<세상의 멸망과 노르웨이의 정서>
"....
거대한 고래 얘기를 해줄까
어느 날 물 위에 올라온 고래는
말로만 듣던 여객선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지
수면을 가르는 늠름한 뱃머리와
아름다운 뱃고동 소리에 정신이 팔린 고래는
다가오는 여객선을 피할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새도 없었던 고래는
한껏 입을 벌려 자신의 몸통만 한 여객선을
삼키고 말았지, 순식간에
뜨거운 태양이 배 속에 처박히는 기분이었어
고래는 여객선을 소화시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
입을 꾹 다문 채 바다 위를 불편하게 떠다녔지
고래는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어
콧구멍으로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 올릴 수도 없었고
투명한 햇빛도 바람도 머리 위의 갈매기들도
고래의 기분을 바꿔줄 수는 없었지
이봐, 친구, 안색이 왜 그 모양이야
쇠작살이라도 삼킨 얼굴을 하고 있군그래
영문을 모르는 친구들은 걱정을 해주었지만
위로가 되지는 못했지, 일주일이 가고
열흘이 가고, 어느덧 한 달째 되던 날
거대한 고래는 점점 졸음이 몰려왔고
바다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어
반쯤 벌어진 고래의 커다란 입속에선
여객선에 타고 있던 승객들의 부패한 시체와
갖가지 물건들이 하나둘,
수면을 향해 해초처럼 떠올랐지
목욕 가운을 걸친 남자도, 슈트도, 머플러도
아기도, 유모차도, 식탁보도, 칠면조도
드레스 차림의 여자도, 옷 가방도, 모자도
긴 머리칼의 소녀와 지팡이를 움켜쥔 노인도...
차례차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어
고래는 마치 꿈을 꾸는 듯
그것들이 바다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지
아름답구나...더럽게 아룸다운 것들을 집어삼켰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