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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
  • 윤덕원
  • 16,200원 (10%900)
  • 2025-09-01
  • : 5,015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중에서, 2009년의 우리들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 날은 어느 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 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이라는 가사를 멍하니 따라부르며 듣곤 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불시에 깜짝 놀라곤 했었는데, 그 2009년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가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실감됐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2026년 1월. 2009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올해 고2가 된다. 내가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2007년에 태어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올해 대학교 신입생이 된다.  나는 그들이 태어나서 살아온 시간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브로콜리너마저를 알아 왔고, 그들의 노래를 들어 왔다. 이런 생각을 하면 보통은 아득해지고, 때로는 든든하고 고마워진다. 브로콜리너마저에게. 수많은 음악가들이 과거의 음악으로만 남아 있거나 더이상 듣지 않는 음악가로 변해버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믿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줬고 불러줬고 연주해줬으니까.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 태어나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그걸 해내줬으니까.

 

그 때문이겠지, 나에게 덕원님은 '나와 달리 엄청나게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었다. 반듯하고 단정하며 어른스러운 생활인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이라는 덕원님의 책 제목이 일견 어색했었다. 하나도 대충이지 않을텐데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여기서의 '대충'은 '함부로' 혹은 '무성의하게'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걸. 어깨에 지나치게 힘을 주지 않고, 너무 허세를 부리거나 비장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음악을 업으로 삼는 생활인이자 직업인답게 열심히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일해오셨던 걸 겸손하게 나타낸 말이라는 걸.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덕원님과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계속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걸. 


그래서 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브로콜리너마저가 2026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책 초반부에 실려 있는 글 중 재주소년 박경환씨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는 글을 읽을 때는 CD를 열심히 사모으며 음악을 챙겨듣던 2000년대가 생각나기도 했고ㅋㅋㅋㅋ 전역하고 나니 브로콜리너마저가 활약 중이어서 의식했다는 얘기가 너무 웃겼다ㅋㅋㅋㅋㅋ 그때의 브로콜리너마저는 정말 20대가 20대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고 재주소년은 20대가 10대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던 거 같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다 젊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어...그리고 류지님이 그만두는 거냐고 물어보다가 울었다는 얘기는 엄청 찡했다. 브로콜리너마저가 루오바뮤직과의 부딪힘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워낙 유명하니까 굳이 언급하지 않을 것도 없겠지. 그때는 나도 '아 브로콜리너마저 안없어졌으면 좋겠는데ㅠㅠ 루오바 뭐야ㅠㅠㅠㅠ'하며 안타까워했으니까ㅠㅠㅠ

 

덕원님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기반으로 한 책이다 보니 코로나 시절의 이야기도 꽤 많이 실려 있었는데, 2020년=코로나 첫해 때 '이제 다른 일을 알아보려고 한다'는 메모를 쓰셨다는 글을 읽을 때는 아찔하기도 했다ㅠㅠㅠㅠ 세상에. 나의 소중한 브로콜리너마저를 코로나로 잃을 뻔했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에도 그 모든 일을 묵묵히 감내해주신 덕원님과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에게 고맙다.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것을 막상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버텨내고 나면 희미했던 시간도 사라지지 않고 무언가가 되어 남을 것이다라는 덕원님의 말씀에 백번 공감한다.


그리고 다행히 오랜 시간 동안 믿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주는 음악가로 덕원님이 또 브로콜리너마저가 존재해주시는 덕분에, 열에 하나도, 보편적인 노래도, 유자차도, 편지도, 마음의 문제도, 졸업도,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도, (아 너무 예전 노래만 나열하고 있나) 혼자 살아요도, 속물들도, 좋았었던 날들도,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도, 요즘 애들도, 내 마음속에 잘 고여 있다. 노래에 물을 주듯에 언급된 내용처럼, 과거에 좋아했던 어떤 음악이 그것을 만든 이의 삶 때문에 '더이상 들을 수 없는 것'으로 변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그래서 아마 나는 앞으로도 긴 시간 다정한 시선으로 브로콜리너마저를 계속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브로콜리너마저는 나 말고도 너무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폭넓게 받으면서 계속 곁에서 다정한 음악들을 들려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정한 시선은 그 끝에 있는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는 문장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왜 우리가 타인을 다정하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2009년의 우리들이나 속좁은 여학생을 불러주던 밴드가 사랑한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이나 졸업을 불러주다가, 단호한 출근과 혼자 살아요를 부러주더니, 이제는 요즘 애들과 너를 업고를 불러준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계속될수록 주름이 늘어나고, 그 주름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새겨지고, 그 이야기가 노래로 만들어진다는 게 참 아름답다. 언젠가 덕원님이 '수능날' '수시 원서' '학종' 막 이런 노래를 만드시면 진짜 기분이 되게 이상하겠다...(물론 그런 노래가 나올 리 없을 것 같지만) 그러니 이런 말 말고 '바른생활을 들었으니 인생이 달라지도록 그대로 해보려고요!'는 문장을 적어놓아야겠다.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고,물을 마시고 청소를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그냥 걸어야지. 그리고 계속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들어야지.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차곡차곡 잘 쌓아가면서. 이렇게 소중한 노래들을 오랫동안 만들고 불러주어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 그리고 덕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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