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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고 쓰는 Syo

 

바깥은 요지경

 

 

1

 

놀랍고 신기한 소식을 하나 전하고 시작해야겠다. 이제부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다.

 

코로나 이후로 모든 영화나 드라마는 일제히 ‘판타지’ 혹은 ‘사극’ 장르로 변모했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위장 이외의 목적으로는) 절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나노머신이 당연하게 삽입되어 있는 세상(SF)이거나, 아예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판타지)이거나, 아니면 코로나가 없던 시절의 한국을 배경(사극)으로 하거나…….

 

 


2

 

춥다. 두 시까지는 괜찮았는데, 세시 언저리부터 굉장한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도서관 가는 길에는 내리막도 땀 흘리며 내려왔는데, 돌아오는 오르막은 덜덜 떨면서 올랐다. 누구 건지는 모르겠지만 털임은 분명한 어떤 미지의 털이 안쪽에 잔뜩 붙은 후드집업을 입고 나갔는데, 맹렬한 바람은 미지의 털을 헤집고 들어와서 내 털까지 수월하게 건드려댔다. 내일은 눈인지 비인지 하여간 또 뭔가 내린다던데, 길은 얼고 월요일에 직장인들은 출근이라는 걸 한다던데. 집 밖은 난세다.

 

 

 

3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 오늘의 푸코는 연애중-연애끝이다. 우선 푸코의 새 남친을 소개합니다.

 

장 바라케는 1928년생이다. 스무 살에 파리 콩세르바투아르[음악학교]에서 메시앙의 음악분석 강의를 듣기 싲가했다. 1951년과 1954년에는 불레즈와 이베트 그리모와 함께 현대음악 연구팀을 만들어 현장실습을 했다. 1952년에는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아마도 그가 미셸 푸코를 만는 것은 1952년 중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평범한 우정이었다가 차츰 사랑의 관계로 발전했고 급기야는 폭풍 같은 열정의 관계가 되었다. 1952년 5월 그들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푸코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아주 못생기고, 그러나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정신적이다. 게이에 대한 박식함은 백과사전급이다. 내가 이때까지 알지 못하고 있던, 그리고 앞으로 고통스럽게 탐험하게 될 세계를 권유받은 듯 당황스러웠다.“

_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118쪽

 

푸코요? 아, 기억이 납니다. 지나쳐간 많은 남자 중 하나였죠(※ 이런 말 한 적 없을걸)


장 바라케(장 바라크, Jean Barraque). 이게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일 쉽게 찾아지는 사진이고, 더 젊은 사진은 없나 아주 잠깐 뒤져보긴 했지만 왜 그런 걸 찾고 있어야 하는지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는 바람에 금방 포기. 약간 사르트르 느낌도 있는 것 같지만, 외국 사람 얼굴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해서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임은 부정하기가 어렵다……. 위에 보시면 알겠지만 푸코는 ‘아주 못생기고’라고 신랄하게 얼평했다.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굴지 미처 모르고서.

 

그가 바라케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푸코의 편지를 읽어보면 그가 바라케를 자신의 복종적 성향에 딱 부합되는 이상적인 성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_ 같은 책, 122쪽

 

자, 그럼 지금부터 푸코, 박사논문에서조차 그 ‘문학적 자질’을 인정받은 천재 푸코, 『성의 역사』속 현란한 문장 드리블로 가련한 더덕단 멤버들에게 대머리 공포증을 선사한 대가 푸코의 연애편지 속으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1. 1955년 8월 스웨덴으로 떠나기 직전의 '마지막 주'가 두렵다고 하면서

 

2. 그는 바라케에게 하루 종일 그를 욕망하며 보내고 있다고 편지를 썼다.

 

3. 편지에서 그는 타인에게 속해 있다는 것, 타인에게 소유된다는 것, 또 타인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4. 마치 빨간색 실이 짜여져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듯이 그의 팔이 만들어 내는 엮임 속에 자신의 모든 삶이 미끄러져 들어가 행복과 아름다움과 힘의 직물이 짜여진다고도 했다.

 

5. 그러고는 자신을 아낌없이 다 주었기 때문에 더이상 자신은 줄 게 없으며,

 

6. "당신은 내 욕망과 무관하게 순전히 당신의 쾌락만을 위해 나를 취하면 됩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7. 그것이 자신의 '비밀'이며 이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8. 그가 웁살라에 도착한 다음 날인 8월 27일에는 그는 그들의 '마지막 밤'의 '행복'을 상기시키며

 

9. "여기는 당신의 부재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10. 8월 29일에는 프랑스에 빨리 되돌아가기 위해 논문 준비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썼다.

 

11. "우리 두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삶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동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삶을 잃거나 망칠 권리도 두 배로 줄어듭니다"라고도 썼다.

 

12. 9월 1일에는 그가 보내고 바라케가 수취한 편지들이 이미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으며, 유일한 주일 예배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13. 그리고 만일 바라케가 원한다면 다음 해 5월에 영구적으로 귀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4. 10월에 그는 "그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15. ……옆에 의지할 바라케의 '단단함'이 없이 밤에 '지독한 악몽을 향해 길을 떠나는' 고통이 느껴지는 구절들이 그러했다.

 

음, 6번을 쓰던 순간의 마음가짐이 가장 궁금하고 15번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ㅋㅋㅋ

 

개인적인 글들, 둘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담은 비밀스런 편지글들이 시간 속에 박제되어버리는 꼴을 선선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셀럽들의 운명인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 시간 저승 상황

 

아, 그렇게 (낯)뜨겁던 연애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였는고 하니,

 

1955년 12월과 1956년 1월에 푸코는 겨울방학을 보내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 푸아티에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얼마간 보낸 다음 그는 파리로 갔다. 그러나 바라케를 다시 만났을 때 사태는 아주 나쁘게 돌아갔다. 몇 주 후 1956년 3월 10일과 11일에 프티 마리니에서 열린 「속창」발표회에 푸코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며칠 후 바라케는 그에게 절교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더이상 '12월'을 원치 않는다. 타락한 배우와 관객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현기증 나는 광기에서 벗어났다."

_ 같은 책, 123쪽

 

사랑 참 모를 일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늘 지게 되어있다는 만고의 법칙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우리 푸코(30, 웁살라)가 더 많이 사랑했구나……. 푸코여, 푸코여. 젊은 날의 사랑이란 그렇게 뜨겁게 시작하여 뜨겁게 망하고 그러는 것이지. 좋을 때다 좋을 때야. 푸코 너도 내 나이 한번 돼 봐라…….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푸코의 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대충 매조지하고, 다음 이 시간에는 공무원들이 우리 푸코의 폭풍 행정력 보고 지린 SSUL 푼다…….

 

 

 

--- 읽은 ---

 


17. 아무튼, 목욕탕

정혜덕 지음 / 위고 / 2020

 

아무튼 시리즈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시리즈라서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 글쓴이들의 글솜씨 역시 다양함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이 책보다는 저 책이 좋았는데, 그래도 그 책보다는 이게 낫군- 따위의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 다른 분들의 감상을 보고 깜짝 놀라는 일이 있다. 아, 글쓴이만 다양한 게 아니라 읽는 이들도 다양하구나. 그것은 읽는 사람마다 ‘글솜씨’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소재의 힘이다. 내 고유 주파수에 딱 맞는 소재가 등장하면 글솜씨를 따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열리기 때문. 일단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이 등장하면, 아무튼 읽어보는 게 좋다.

 

탕에 들어가기 직전,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야심한 밤, 꼬들꼬들한 라면을 젓가락으로 막 집어 들 때와 견줄 만한 순간. 발가락이 물에 닿으며 짜르르한 기분을 느끼는 건 겨우 1초다. 행복은 그렇게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바로 그 찰나를 위해 기꺼이 눈바람을 맞으며 빙판 위를 살살 디뎌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는가. 희뿌연 먼지를 마시며 때에 절어 살면서도 그 1초 때문에 발목에 또 힘을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_ 정혜덕, 『아무튼, 목욕탕』

 

 

 


18.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솔르다드 브라비, 도로테 베르네르 지음 / 맹슬기 옮김 / 한빛비즈 / 2019

 

매 챕터가 고작 열 몇개의 작은 그림과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쪼꼬만 것들이 이 책 바깥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환기시킨다. 이 책 속 한 챕터를 한 권 통째로 다루는 두꺼운 책들을 향해 사방팔방으로 갈고리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냥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활동이었다. 고기와 비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냥한 고기를 먹는 것도 남자였다. 사냥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_ 솔르다드 브라비, 도로테 베르네르,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syo는 저런 논리를 볼 때마다 재밌어 죽는다. 인간이 외부의 에너지 공급 없이 영원히 스스로 운동하며 일을 하는 가상의 기관,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어 불가능한 그 영구기관을 꿈꾸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런 영구기관적 무논리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이 인간의 머리니까.

 

 

 


19. 생각의 말들

장석훈 지음 / 유유 / 2020

 

한 권의 책으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경우는 예상보다 적고, 그 전환이 한마디 말로 일어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어떤 한 줄은 한 권에 필적하기도 하고 어떤 한 권은 한 줄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한 문장을 찾기 위해 수 권을, 때로는 수십 권을 읽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대체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 그 한 줄에 도달했기 때문에 비로소 내 머리를 때리는 것이다. 이 책에 모아 놓은 문장이 당신에게 곧바로 그런 한 줄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조용히 책을 덮었다면, 희망을 버리지 말고 바로 다음 책으로 움직이시기를. 좋은 문장은 한 발이라도 더 가까이 마중 나온 사람의 품에 안긴다.

 

끝으로, 생각에 관한 말들을 모아 놓고서 크게 저어하는 바가 있다면, 그건 바로 클리셰로의 전락이다. 클리셰는 껍데기만 남고 의미의 알맹이가 사라진 상투적 표현이다. 흔히 명언이라 불리는, 아무리 듣기 좋은 말도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비판적 사고를 끌어낼 수 없다면 그건 값싼 상투어에 불과하다. 하물며 다른 말도 아닌 생각의 말들을 모아 놓았을진대, 그에 대해 별생각이 없거나 하나의 생각에 고착된다면 이보다 더한 클리셰의 폐해는 없다.

_ 장석훈, 『생각의 말들』

 

 

 

--- 읽는 ---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 / 전성민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홍승은

다시, 헤겔을 읽다 / 이광모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 데이비드 실즈

숨그네 / 헤르타 뮐러

자본주의가 대체 뭔가요? / 조너선 포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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