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운전하는 길이 길어 소설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받아두고 다른 책에 밀렸던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읽었다. 돌아다니는 길에만 들어야지 생각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계속 읽었다. 비극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인 그윈플레인도, <공각기동대 : Stand Alone Complex>의 웃는 남자인 소년도, 배트맨의 웃는 남자인 조커도 저 아래의 바닥에서 그 슬픔을 본 이들을 대변하는 누군가였다. 차별과 멸시를 뼈로 느낀. 공감하지 못하는 누군가와, 이용하려는 누군가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사이에서 그들은 죽음으로, 소멸로, 악으로 대처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본 것은 하층민의 고통으로 살찐 귀족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경제 권력과, 착한 척하는 세상 자체였다. 웃는다. 웃는다는 것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엄숙한,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착한 가면의 세상에. 세상이 웃는 한 사람의 누군가로 뒤바뀌지 않지만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인간의 입이라는 분화구가 분출하는 온갖 용암 중 가장 침식성이 강한 것은 즐거움이다.‘ 즐겁게 썩소를 날리자. 비웃어주자.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니, 그러면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은 국민 정서상 시기상조라 안된다니. 음주운전을 지지하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은 안된다. 하지만 애주가들이 표를 많이 주니 음주 단속이나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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