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의 책은, 우리네 시대와 함께 살아숨쉰다. 사과나무 밭 달님 또한 한국전쟁이 배경으로 흐르고, 그의 동화에서 볼 수 있었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그 뒤를 쫓는다.
슬픈 우리의 역사를. 슬프지만 비극적이지 않은 동화다운 아름다움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빵끗 미소 지으며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말하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전쟁'이라는 역사의 슬픈 고리에서 사랑하는 어릴 적 옛동무를 잃은 소녀는, 어두운 밤바다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진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두 눈을 반짝인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동화들과는 달리, 너무도 차갑도록 끝을 맺어버린 결말이 조금은 당황스러웠고 조금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으리. 하지만 그것이 그 어떤 해피엔딩보다도 더 뜨겁게 나를 달구고 있음을 나는 이내 느낄 수 있었다.
한센병에 걸려, 눈썹이 하애진 아비는 그렇게 몇해가 흘러, 희고도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밤에 다시 찾아왔다. 도망치듯 집을 나왔던 그 날처럼 아비는 주머니 안에, 이미 다 커버린, 자신의 발보다도 더 큰 신을 신게 되어버린 자식들을 위해 돈을 놓아두고는 그렇게 또. 도망치듯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가족은 하얀 눈밭을 걸어 이미 사라져버린 아비의 발자국을 쫓는다.
낮은 곳, 소외된 사람들, 냉혹했던 시절을 그리는 동화가. 가슴 시리지만 결코 비극만으로 돌올하지 않은 이유는 권정생 작가의 힘이라 생각한다.
소녀가 제 키만큼 높이 부딪쳐 오는 파도 속으로 자꾸자꾸 걸어들어가던 그 날 밤도. 하늘의 별은 고향 달맞이산 너머의 살구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책을 읽다 문득 별이 보고 싶어서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