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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일기

처음에는 어려운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몇 장을 해치웠던 이 책이 어느순간 마음을 헤치고 들어왔다. 마지막 장을 덮은 오늘까지 나는 완전히 사로잡힌 심정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영화 '샤만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본 친구가 이 영화의 변태성에 대해 너무 확고한 인상을 남겨 준 덕분인가 보다 했다. 왜 그렇게 유럽의 소위 앞서나간다는 이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어렵고 변태적인가..? 빈알맹이를 숨기기 위해 요란을 떠는 건 아닌가? 그랬다. 하지만 '샤만카'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과 충격을 이 책에서 역시 느꼈다. 껍데기만 요란한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샤만카'에서 여자는 남자와 온갖 섹스를 하다 결국엔 남자의 골까지 파먹는다. 그 끔찍한 행위가 눈물겨웠던 것은 그 여자의 행동이, 걸음걸이가 너무나 외로워 보여서였다. 마지막까지 혼자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그 여자는 애인의 골을 파먹으면서까지 홀로 되는 고독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스스로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피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엔 자신의 종착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스스로 엄마의 집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었던 에리카처럼...

 

에리카는 사실 변태적인 섹스를 할 줄 모르는, 단지 말과 글로 온갖 변태적인 섹스를 하고 싶다고 하는 거짓말쟁이다. 그녀가 하고싶었던 말은 단지 나를 사랑해 달라, 때리지는 말아 달라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학대하고 남의 것을 빼앗는다. 왜냐 하면 그렇게 밖에는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피아노라는 대상은 완전한 음을 갖춘 채 연주자를 기다리며 놓여 있다. 누군가의 연주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 그 수동성은 타인과 단절된 에리카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런 피아노를 치는 여자 에리카는 자신을 철저히 사육한(?) 어머니와도 내적으로 단절된 채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한다. 완전한 고립... 하지만 고독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녀처럼 강제적으로 타인과 단절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고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다른이와 묶여 있지 않을까 봐 두려워 한다는 것을..

 

에리카의 마지막 발걸음은 나를 슬픔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한 이 소설의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은 슬픈 여운을 남긴다. 결국엔 자기자신을 찌를 수밖에 없는 그 나약함이라니.., 정상적이라는 이유로 찬란한 햇빛 속에서 보호받는 발터 클레머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 속에 수많은 의문이 일어났다. 폭력과 정상, 비정상, 변태적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하며 무관심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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