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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책 첫 페이지부터 주인공의 포효가 울려 퍼진다.
주인공은 안진진. 자신의 삶을 두고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고 진단한 주인공이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을 탐구하며 살겠다 부르짖는다.
안진진의 아버지는 가정을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도는 형편없는 인간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아등바등하며 주름살을 더해간다. 안진진의 이모는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다. 외모는 판박이지만 가정을 살뜰히 챙기는 이모부 덕에 온실 속 화초처럼 안온한 삶을 영위한다.
안진진에겐 남자가 둘 있다. 모든 걸 계획대로 진행해야 성이 풀리는 나영규와, 세상 물정과 계획성은 밥 말아먹고 훌쩍 꽃 사진을 찍으러 떠나기 일쑤인 김장우다.
똑같이 생긴 엄마와 이모는 이제는 너무나 다르다. 행복의 기준조차도. 누구에겐 불행스러운 일이 다른 이에겐 차라리 행복이고, 누구에겐 행복으로 여겨질 법한 일이 다른 이에겐 한없는 불행이다.
하물며 쌍둥이도 이럴진대.
저마다 다르게 나고 자란 세상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오! 그건 옳지 않아!”
이모의 딸 주리가 진진을 향해 내뱉은 이 대사를 우리는 매일 옆구리에 끼고 산다. 하지만 진진의 말처럼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에겐 옳은 일이 누군가에겐 한없는 불행일 수도 있는 것을.
출간된 지 27년 된 작품이 꾸준히 독자의 선택을 받는 건 온전히 작가의 통찰과 아름다운 문장 덕이다.
10년 뒤에 꼭 다시 읽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