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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삶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난 그 본질이... 그 의도가 궁금하다. 나를 이 세상의 인간으로서 있게 하는 그 의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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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에 서 있는데 조금 변형된 스몰토크 질문이 날아왔다. "Where are you from(어디에서 왔어)?" (중략)
"내가 가게에서 나와 버리면 가게에 너 혼자 여자라서 기다렸어. 여성은 여성이 지켜 줘야지. 혼자 온 젊은 여자한테 왜 저렇게 오래 질문을 던졌는지 정말 모르겠다. 늘 그렇게 친절하고 행복하게, 그렇지만 조심히 다니렴."
난생처음 본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고, 너무 고맙다고 나도 반드시 다른 여성에게 꼭 같이하겠노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말하기 전까지 나는 그 가게에 그와 나만 여자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울과 현실에서 무뎌지는 생의 감각은 일과 성공, 취향과 유행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연대와 친절, 삶의 희로애락 같은 것들이 팔딱팔딱 뛰는 곳에 나를 덩그러니 놓아두면, 내가 잊고 있는 정말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이 다시금 생생해진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왜 콘텐츠 기획을 하고, 왜 동료들과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왜 돈을 벌고, 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훌쩍 낯선 땅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로 이런 거다.
대형 서점에 가서 직원분께 특정 섹션의 위치를 물었는데,
내가 한국인임을 깨달은 직원분이 "저 작년에 서울 놀러 갔었어요!" 하고 기꺼이 호의를 표해줄 때(굳이 표해'준'다는 표현을 쓴 건, 낯선 곳에서의 호의와 관심이 그만큼 반갑고 따스해서). 반가움을 품은 서로간의 몇 마디 대화 끝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가시길 바라요"라고 환하게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
맛이 좋기로 소문나 늘 시끌벅적한 음식점에 갔는데,
차를 가져다 주신 직원분이 나와 짝꿍의 한국어 대화를 듣고는 "어머 한국인이세요? 저도 어머니가 한국인이에요!"라며 우리의 대화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기억.
환한 표정과 목소리와 시간, 이른바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낯선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던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다시금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분주한 일상의 무수히 많은 장면 속 찰나의 순간에,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타인에게 따스한 관심을 표할 수 있었을까.
읽는 동안 책에 실린 표현 그대로 '연대와 친절, 삶의 희로애락 같은 것들이 팔딱팔딱' 뛰었던 경험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정말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바쁜 현실에 지쳐 금세 무뎌지고 희미해지겠지만.
"인간은 이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삶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난 그 본질이... 그 의도가 궁금하다. 나를 이 세상의 인간으로서 있게 하는 그 의도가."-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