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안 본 지 2년쯤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TV를 틀어놓고 멍하게 TV를 쳐다보는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TV 모니터를 수납장 위에서 치우고 인터넷 TV를 해지했다. 가끔 영화를 볼 때만 TV 모니터를 꺼내곤 했는데, 모니터를 꺼내는 행동이 점차 귀찮게 느껴지고 노트북 화질에 만족하게 되면서 마침내 TV 모니터를 내다 버렸다.
오랜 세월을 별생각없이 함께했던, 우리 집의 적지 않은 공간과 나의 하루 중 짧지 않은 시간을 차지했던 TV를 버리면서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 인터넷이 고장났다.
집에서 인터넷을 무려 5일 동안 사용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
‘한 달 10GB 휴대폰 데이터 요금제로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을 감당해 낼 수가 없는데, 이것 참...’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껴안고 지낸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침내 벗어나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틈엔가 유튜브가 TV 방송을 대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인터넷이 고장나 마음껏 영상을 볼 수 없었던 5일 동안 책도 읽고 오디오로 음악도 들으며 나의 세계에 몰두해 보려 나름 애썼지만, 평소보다 요란하게, 마치 탬버린을 흔들어 재끼듯 밀려드는 온갖 상념과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 과도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시끄러운 나의 머릿속에 익숙해질 때 즈음, 인터넷 기사님이 우리 집을 찾았다. 나는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 창을 켰다. 처음으로 접속한 페이지는 즐겨찾기에 있는 유튜브였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면서 이 따끈한 경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책에서 밝혔듯 이 책은 집중력을 되찾는 방법을 일러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한 저널리스트의 오랜 취재 기록, 르포르타주에 가깝다.
‘집중력’이란 것에 문제 의식을 느낀 저자는 집중력을 파헤치기 위한 긴 여정에 들어간다. 몰입, 수면, 소설, 딴생각, 소셜미디어, 스트레스, 음식 같은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집중력을 파고든다. 관련 연구를 하거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스트 특유의 집요함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저자 나름의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집중력’을 하나의 능력으로 여긴다. 개인이 노력하면 집중력은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고 믿고, 도무지 집중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주입된 환상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은 신성한 활동이니 근면하게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환상이 우리에게 주입된 것처럼.
저자는 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빌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집중력 저하 현상을 비만율 증가 현상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고. 50년 전에는 매우 드물었던 비만이 오늘날 서구의 유행병이 된 건 우리가 갑자기 탐욕스러워져서가 아니라고. 환경과 생활 방식이 변하면서 신체도 변하게 된 거라고.
마침내 에필로그에 이르러서는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존의 경제 성장 개념(경제는 늘 성장을 거듭해야 한다는)을 걷어내고 ‘평형 상태 경제(steady-state economy)’로 나아가는 선택지도 있음을 언급한다.
지금 당장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일러주지는 않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들을 짚어주어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
무심결에 받아들여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나와 사회 전체의 집중력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에게 몰입하며 만족스럽게 지내려면 내가 놓인 환경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도 실천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p.326
자료를 조사하는 내내 집중력 위기의 구조적 특징을 명심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살고 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개인적 실패로 받아들이고 개인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압박받는다. 집중할 수 없는가? 과체중인가? 가난한가? 우울한가? 이러한 문화에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도록 배웠다. 그렇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힘을 내서 이 문제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서 찾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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