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11년 전 이사했을 때부터 있었다. 문제집을 주로 파는 서점이었고 다른 책도 좀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예쁘고 멋진 서점들을 많이 봐서 눈이 높아진 나로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지는 않는 곳이었다. 아이랑 학습지 같은 거 보고 산다고 어릴 때 몇 번 가보았고 (그러고보니 학습지를 하고 싶어할 때가 있었지), 코로나 때 지원금을 받아 책을 주문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몇 년간 가보지 않았었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려고 할 때 집사3이 집 뒷산에 다이아몬드가 묻혀있는 꿈을 꾸었다며 엄마 이제 돈 안 벌어도 된다고 (그러니까 복직하지 말라고) 할 때 일을 그만두고 서점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멀쩡히 잘 있는 동네 서점을 노리며 사장님 내외분이 연세가 좀 있어보이시니 몇 년 지나면 서점을 접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했었다. 집사2에게 이야기하니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좋고 무슨 일을 해도 좋은데 돈은 지금 수준으로 벌어오라며 냉정하게 잘라줘서 (...) 퇴직의 꿈은 바로 접었다. 그래도 가끔 서점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인지는 전혀 감이 없는 채로 막연히 퇴직금 받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설마 권리금이 있을까 뭐 그런 생각... 그럴 때 집사2는 서점은 돈 전혀 못 벌고 서점 주인은 책 못 읽는다던데 라는 말을 던지고 자리를 뜨고, 집사3은 아니야 엄마 그냥 계속 회사 다녀 라고 말해주었다. 냉정한 그들... 흥...
그런데 얼마전 퇴근하며 보니 서점이 없어졌다. 언제 철수했는지 모르지만 바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간판을 포함한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저 샛노란 색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뭐지??? 어린이집은 아닐테고... 어린이 학원...??
다음날 출근하면서 보고 알았다. 저 익숙한 외벽 모양, 저 익숙한 색깔... 그것은 메가커피였다. 며칠 뒤 한 운동선수의 얼굴이 인쇄된 현수막이 걸렸다. 서점.. 내 서점 자리가 메가커피가 되다니. 그냥 카페도 아니고 저가 커피 가게가 되다니... 허전해하는 나와 달리 집사2는 서둘러 메가커피 앱을 깔았고 운동 선생님들도 무척 반가워했다. 어쩜 지금까지 이 동네에는 저가커피가 없었냐며.
카페가 오픈했고 더운 날씨에도 그 앞 보도에는 항상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다. 나도 몇 가지를 먹어봤는데 (파르페 팥빙, 애플 유자티, 할메가미숫커피 등) 다들 너무 달아서 내 입맛에는 잘 안 맞는다. 아메리카노 정도만 이용 가능할 것 같은데, 아메리카노는 자급자족(?)이 가능하므로 잘 이용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서점을 한다 해도 꼭 우리 동네에서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뭔가 씁쓸하고 허전하다. 책을 좋아하는 거지 책을 파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 팔 자신도 없지만,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멋진 독립서점이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하다가 없으니까 나라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 만들어주면 더욱 좋은데.. 어쨌든 정말 생각이 있었으면 서점에 자주 들르며 사장님 내외와도 안면을 텄어야 했던 걸까... 이렇게 갑자기 없어져버리다니.
며칠 전 집사2가 희망도서를 빌려왔다며 가져다주었다. 내 계정은 횟수가 차서 집사2의 계정으로 말없이 신청하고는 잊어버렸는데, 얘기도 안하고 조용히 빌려다 준 것이다. 도착했다고 문자를 받았을 때부터 책 제목을 봤을텐데... 나를 보는 눈빛이 '서점은 못하게 되었고 어쨌든 회사는 그만두겠다는거냐' 인 것 같다고 느꼈다면 내가 찔려서 그런 거겠지.

책을 얼마나 읽으려고 회사를 그만뒀는지, 회사를 다니면 '노이즈'가 있다는데 왜 책을 읽기 힘든건지, 궁금하긴 하다. 친구도 궁금하다며 얼른 읽고 알려달라는데 과연 읽게 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