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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가 살고 있습니다.
  •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 이문재 엮음
  • 12,600원 (10%700)
  • 2024-07-03
  • : 5,033

거의 모든 시를 두 번 읽었다. 피곤함에 찌든 일상이 버거웠고, 맘 편히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가난한 마음이 서글펐다. 시간을 내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낼 수 있는 시간 들이 항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를 좀 먹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분량은 짧지만 짧은 시간에 나를 가장 빨리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시집을 꺼내 들었다. 항상 머리맡에 있었고, 언제든 읽어달라고 나를 아련히 내려다보는 시집에는 내 마음을 ‘쿵’ 내려놓는 듯한 시들이 많았다.

조금 알면 오만해지고/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된다./거기서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무엇을 조금 알면」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 보았던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나 자신과 오만하게 굴었던 수많은 시간 들과 잘난 척 질문했던 시간 들이 스쳐 지나면서 부끄러웠다. 진정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던 시간 들이 까마득했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더 까마득히 멀어져갔다.

뒤로 물러서 있기/땅에 몸을 대고//남에게/그림자 드리우지 않기//남들의 그림자 속에서/빛나기 「은엉겅퀴」 _라이너 쿤체

그간 나는 누구의 그림자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타인의 그림자에 머무르며 기대어 있었는지, 그림자에 숨어 기대어 살았는지, 아니면 그림자를 핑계 삼아 내 능력 밖의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경지인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가 과연 가능할까? 이 시집을 엮은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이 시는 종결어미를 바꿔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내가 빛나게 하소서’라고 평생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시다. 지금까지의 삶이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이런저런 방황을 하고 횡포를 부렸다면 앞으로의 삶은 남들에게 내가 그런 그림자가 되어줄 수 있길 바랐다. 마더 테레사의 기도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아이들이 잘한 일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마음을 다해 칭찬하게 하여 주소서.

「어버이의 기도」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 중

나를 비난으로 몰아가지 않고, 반성은 하면서 부디 이렇게 되길 바랐다. 아이들을 서슴없이 칭찬하고, 습관처럼 읊조리는 기도문이 아니라 누구에겐가 품은 앙심을 털어버리길 원했다. 시를 읽는 이 짧은 순간에도 이 시가 나의 기도가 되어 신이 듣고만 있는 기도가 될지라도, 내 기도가 세상으로 나오길 바랐다.

이 기도에는 욕망을 줄여 마음과 몸을 간소하게 살고 싶다는 뜻도 있지만 ‘아무것도 빌지 않아도 될 만큼 평온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큰 욕심도 있습니다. 「기도에게」 박준

시를 읽고 나니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피곤할 일상, 시 한 줄 읽을 틈 없이 가난한 마음들이 분명 휘몰아치고 있었는데, 시를 읽고 나니 내 마음이 부자가 되었다. 과거는 어땠는지, 미래는 어떨지 알지 못하지만, 현재의 나는 신께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만큼 깊은 어려움이 없다. 찾으면 분명 나올 테지만 일시적인 평안함일지라도 이 시집의 모든 기도가 내 기도가 되어 세상으로 흩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모두 빛나기를. 그 빛들이 모여 밝은 그림자가 되기를. 서로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외롭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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