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글 잘 쓰는 추리소설작가는 송시우 작가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번 책을 보고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려하고 매끄러우면서 가끔씩 사람 마음을 콱 치고 지나가는 문장들로 착착착 쌓여올라가는 서사를 읽는 맛에 책을 붙든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었다. 소재의 특성상 우울증에 대한 고찰이 들어가있는데, 전반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의 심리와 상태에 대한 섬세한 묘사, 우울증이 한국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이런 인식이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개개인의 삶에 어떤 작용들을 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거쳐, 그렇다면 우울증을 사법적 맥락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야할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고민을 던지고 있다. 이 커다란 주제 안에서 추리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사건의 종장까지 죽 밀고 나가는 힘도 인상적이고,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하나하나를 그려내는 방식도 매우 좋았다. 각 인물들이 겪어온 개인사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들이 IMF 시절의 한국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부분에서는 찬호께이의 소설도 떠올랐는데,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의 미시적인 개인사들이 2010년대에 만나고 이어지며 커다란 이야기를 구성하는 와중에 그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서 매우 미묘한 심리까지 건져올리는 솜씨는 역시 송시우 작가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무런 사건이 진행되지 않고 인물들만 나오는 씬들에서도 이런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다. ㄴㅌㅇ(스포가 될 것 같아 부득이하게 초성처리를 한다) 하나까지 깔끔하게 추리로 회수하는 추리소설적 재미까지, 이 묵직하면서도 슬픈 이야기로 하룻밤을 새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송시우 작가의 다음 소설을 이제부터 다시 목빠지게 기다려야한다는 점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