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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맑은 소리
  •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13,500원 (10%750)
  • 2026-04-10
  • : 6,100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처음인 듯 다시 만난 데미안




🕊 데미안

🕊 헤르만헤세

🕊 정여울 번역

🕊 비룡소





선과 악 사이

밝음과 어둠 사이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부름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은 어디까지 홀로 깊이 찬란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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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데미안]을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데미안을 읽었던 때를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 어떤 대회에서 입상을 했고, 부상으로 헤르만 헤세 책 세 권을 선물받았다. 데미안, 지와 사랑, 크눌프 삶의 세 이야기. 아마 이런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 책들을 다 읽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데미안을 읽은 것만은 확실하다.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 이름이 근사했다. '데미안'이라는 제목 역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데미안]은 읽어내야만 하는 책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명확하지 않았다. 뭔가 불온함마저 느껴졌다. 에바 부인을 사랑하다니. 꿈 속에서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녀가 친구의 엄마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만큼 일차원적인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데미안]은 내 삶의 언저리를 자꾸만 맴돌았다. 이유가 뭘까? 무엇이 나를 데미안으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


정여울 작가 번역의 [데미안]을 읽었다. 



데미안이 이렇게 술술 읽혔었나?

이토록 격정적이었나?

이토록 아름다웠나?

이토록 아팠나?



마지막 장면에서 오열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꼬마 싱클레어를 향한 데미안의 당부. 그것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어린 날의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이자, 중년의 나를 향한 채찍이었다.


아직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냐고. 언제까지 삶의 한 부분을 비워둔 채 살아갈 거냐고.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이 양립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의 선상에 머무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악의 세계를 쳐다보는 것 자체를 죄악시한다. 애써 외면하고 부정한다. 한쪽 세계만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과연 가치있는 삶인가에 대해 [데미안]은 질문을 던진다.




✔️ 크로머로 대변되는 악의 세계

✔️ 싱클레어의 집이 보여주는 선의 세계

✔️ 선과 악이 공존하는 데미안의 세계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 


📖 '새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누구나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146)



아프락사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 신의 이름.



[데미안]은 악을 부정하는 선의 세계가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던 싱클레어는 어떠한 경고음도 듣지 못한 채 '프란츠 크로머'라는 악의 세계로 한 발 내디딘다. 그 순간 굳건하리라 믿었던 선의 세계는 맥없이 무너진다. 



'데미안'은 선과 악이 결합하는 그 어느 지점에서 자신만의 규범을 정해 스스로 책임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내면의 깊은 울림을 따라 홀로 외롭게 빛나는 인물. 싱클레어를 구해낸다. 구해낸 것처럼 보인다. 





📌


꼬마 싱클레어. 우리 모두는 한 때 싱클레어였다. 방황과 방랑의 시기에 데미안 같은 존재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에바부인 같은 거대한 상징성을 품었더라면 어땠을까.



전쟁으로 인해 대혼란과 

신에 대한 의문으로 근간이 흔들리던 시대

어떤 길을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휘몰아치는 내면의 광풍을 뚫고

마침내 살아 돌아온 자의 폭풍 같은 성장 드라마


치열한 방랑과 방황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데미안'과 '에바부인'을 포함해 '피스토리우스' 라는 인물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 역시 싱클레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자아의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헤르만 헤세의 그림을 표지로 한 비룡소 클래식 62번째 작품. 정여울 작가님의 애정을 담은 섬세한 번역이 [데미안]을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작품 해설>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이 책의 핵심이다. 


살아가면서 한 번은 읽어야 할 [데미안] 으로 이 책을 권한다. 읽어보면 안다.







🧡비룡소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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