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우리는 '유령'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유령은 우리의 손과 발이 되기도 하고 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 세대들에게 유령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나 역시 유령이 사라진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인 저자는 스마트폰, 생성형 AI,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현대의 디지털 체계를 '유령'으로 규정하였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에 편의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간의 신체와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바꿔 놓았다. 즉 인간의 지위는 도구로 전락하였고 신체는 현실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주변부에 속한 부품이 되었다. 손안에 든 작은 디지털 기기가 내 생각을 대신하고 사유 능력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유령’은 단순히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진 존재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사람들과 연락하며 때로는 감정과 판단까지 디지털 장치에 기댄다. 그런 점에서 유령은 외부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이미 우리 삶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인공지능 시대에 이 유령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만 세상의 변화에 도태되는 삶은 원치 않으니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술에 기대는 나를 발견할 땐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존재의 의미조차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편리함은 분명히 매력적이지만 그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직접 해오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기술에 넘겨주게 된다. 이 책에 담긴 생각은 현실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디지털 시대에 간혹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매일 마주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은 나의 필요에 의해서일까. 아니면 알고리즘에 따라 내 필요성이 정해지는 걸까.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추천되고 정렬되고 분류된 세계 안에서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을 검색하는 것인지, 검색창과 알고리즘이 내가 원해야 할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현실의 경험 때문인지 저자의 이야기가 단순한 경고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책은 디지털 기술을 바라보는 나의 감각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더 편리한 삶을 누리면서도 그 편리함이 무엇을 대가로 하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유령이 사라진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유령에게 내 삶 전체를 내어주고 싶지도 않다. 디지털 세계에서 어디까지 기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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