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걷다 보면 멋들어진 건축물을 만날 때가 있다. 자그마한 집일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큰 건물일 수도 있다. 눈으로 마주한 결과물을 보면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마 대부분은 건물을 설계한 이들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멋진 결과물의 건축주에서 시작된다. 설계를 의뢰하고 실제로 살았던 건축주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행복했을까. 이 책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650여 페이지의 두꺼운 책에는 제2의 건축가라고도 하는 건축주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36개의 건축물과 다양한 건축주들을 소개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2의 건축가를 불러낸다. 아무리 멋진 집이라 해도 끊임없이 하자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면 평온한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 걸작이라는 건축물이라고 해도 그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건축물로서의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 저자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건축주의 상상력과 열정이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읽어 본 건축 관련한 책들은 건축가나 건물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에 건축주의 관심으로 접근한다는 시도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건축물의 사진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실제 그 건물에 살았던 건축주의 삶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주선을 연상케하는 다소 독특한 형태의 사보아 주택은 주말주택을 원한 건축주의 의뢰로 설계된 건물이다. 건축주는 온수와 냉수, 전기와 중앙난방, 그리고 추후 증축이 가능하기를 원한다는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지하실은 침수됐고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건축주는 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반해 핀란드의 거장 알바 알토는 땅에 뿌리를 내린 건축을 강조하며 숲을 닮은 집을 완성했다. 땅의 모양, 햇빛, 주변을 바라보는 시건들을 종합하여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주택을 구상한 것이다. 평소 미술품을 수집하는 건축주 부부의 니즈에도 딱 맞는 건축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가능하다면 건축주의 입장에서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을 떠올려 본다. 모든 인간이 본디 건축가였으며 '짓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건축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건물 하나쯤은 쉽게 올릴 수 있을 거라는 편협한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건축주가 원하는 방향과 기준이 뚜렷해야만 행복한 집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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