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물과 인류 역사의 현장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약화학자 백승만 작가가 이번에는 스테로이드를 파헤친다. 저자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의약품 개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바빠졌다.
저자는 기적의 염증 치료제이자 장기를 파괴하는 죽음의 약인 스테로이드의 역사를 추적한다. 스테로이드는 여성 호르몬과 남성 호르몬 그리고 부신피질 호르몬 등 "스테롤(sterol)을 닮은 구조의 화합물들"을 모두 일컫는 용어다.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작용도 다양하다. 에스트로겐은 임신을 돕고 폐경기 여성의 골다공증을 해결하기 위한 약물로 사용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성기능 향상과 근골격 크기 증대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스테로이드에 대한 관심은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이 책에서는 1800년대 후반 개의 고환을 이용한 한 과학자의 엽기적인 연구를 시작으로 스테로이드에 관심이 본격화되면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염증을 치료하는 코르티손에 이르기까지 스테로이드를 지배하려 한 인류의 역사를 보여준다.
사실 스테로이드라고 하면 근육과 운동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탓에 현실에서 나와는 관련이 없을 거라 여겼지만 젊은 시절 스테로이드류의 약물 주사를 맞은 적이 있었다. 과도한 다이어트 탓에 신경에 문제가 생겼고 이비인후과에서 한 달 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주사를 맞고 치료했었다. 그때 들었던 바로는 스테로이드류 약물의 부작용이 살이 찔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살을 빼려다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끔찍한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신약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견이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일으켰을 때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스테로이드 연구와 관련한 과학자들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을 살펴볼 수 있었고 스테로이드라는 기적의 물질이 앞으로 인류의 삶에 더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는 스테로이드가 현재의 약이라 말한다. 미래에는 어떤 약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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