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달콤 쌉싸름한 책읽기의 맛..
  • 모든 게 노래
  • 김중혁
  • 11,520원 (10%640)
  • 2013-09-10
  • : 1,067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견딘다. 아니, 이 말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법을 배운다.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시간을 견딘다. 음악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마법이다."

김중혁의 글 속에 담긴 음악을 모두 모아 들으면서 함께 책을 읽는 호사스러운 독서를 했다. 읽을수록 느끼는데 이 작가 정말 내 스타일이다. 김중혁 작가가 작가라서 표현을 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아마 모를거다. 내 마음 속에 담긴 이야기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글들. 언젠가는 한 번쯤 꼭 써보리라 마음만 먹고 있는 글을 김중혁 작가는 이렇게도 훌륭하게 써서 아무렇지도 않게 턱 하고 내놓는다. 그리고 뒤늦게 그 책을 읽는 나는.. 무릎을 치며 마음을 치며.. 이 책에 홀딱 반해버린다. 너무나도 좋아서 몸서리가 칠 정도로 맘에 든다. 책에 모두 음악이 흐르는 것도.. 첫 단편 펭귄뉴스를 읽기 전 내가 먼저 읽은 건 <악기들의 도서관>이었는데 그때부터 탁! 하고 마음을 치고 울리는 것이 있었고 그래서 펭귄뉴스를 찾아보고 그래서 블라블라블라.. 이렇게 그의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되었다. 정말... 이 책은. 그동안의 김중혁 작가의 글에 흘렀던 모든 노래를 모아모아둔 느낌이랄까? 리듬과 박자와 음악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글을 써서 글이 노래같은 이 작가의 이 책은 정말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꼭 사서 가지고 있어야지.. 좋은 책장을 구하면.....ㅎㅎ 지금 책장은 다 차서.. 근데 책장을 더 사둘데가 없으니까. 지금은 동생이 책을 읽고 있는데.. 다시 받으면 그곳에 있는 나를 감탄하게 했던.. 격하게 공감하게 했던... 그 문장들을 다시 좀 정리해서 올려야겠다. 김중혁의 <모든 게 노래>는 이 곡들과 함께 들어야 좋다.    <책 속에서..> p.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순간과 현재를 느끼게 된다. 좋은 음악은 시간을 붙든다. 현재를 정지시키고 순간을 몸에다 각인한다.   p.책을 내면서 노래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난감하다.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멜로디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비트를, 글로 써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이어서 좋기도 했다. 아무리 가닿으려 해도 멀어지는 목적지여서 좋았다. 노래에 대해서 묘사하고 설명하고 부연해도, 노래는 점점 멀리 달아난다. 멜로디는 더 높이 날아오르고, 비트는 더 세게 가슴을 두드린다. 노래는 글을 사뿐히 밟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노래가 없었다면 우리의 계절은 훨씬 흐리멍텅했을 것이다. 봄꽃은 덜 아름다웠을 것이고, 여름은 덜 더웠을 것이며, 가을은 덜 외로웠을 것이고, 겨울은 덜 추웠을 것이다.   모두 자신만의 노래가 있을 것이다. 모두들 그 노래를 잊지 않고 계속 불렀으면 좋겠다. 노래를 잊는 순간, 우리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돼 있다. 가사를 곱씹어 가며 부르든, 흥얼거리며 콧노래로 부르든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불러주든, 자신에게 불러주든 상관없다. 무엇이든 노래가 될 수 있고, 우리는 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둘러보면, 모든 게 노래다.   p.ⅳ 십대의 나는 아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지었지만 사십 대의 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위로'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p.20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길을 걷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있다.   p.27 자전거의 속도와 음악의 속도가 합해쳐 나를 하늘로 붕 띄워 올리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속도와 나와 음악만 남아 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p.29 우리에게 생긴 일이 누군가의 탓은 아니라고, 우린 그저 잘 받아들이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냥 흘러가는 거라고. 바람처럼, 스쳐가는 나뭇잎처럼 그냥 지나가는 거라고. 이런 순간들, 짧은 순간들, 자전거 위에서 맞는 바람 같은 순간들, 자전거를 타면서 음악을 들으면 위험하다. 자전거 위가 너무 좋아져서 내려오기 싫어진다.   p.38 내가 좋아하는 보컬은 대부분 '무심한 목소리'다. 감정이 없다기보다는,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경계를 두지 않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감정을 애써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던져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p.83~84 새 책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척 혼란스럽다. "주인공은 어째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인가요?" 라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 저는 그 책을 읽은 지 오래돼서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라고 대답을 하는데, 질문한 사람은 이걸 농담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내게는 이미 다 지난 일들이다. 그럴 때 소설 속의 시간이 참으로 신기하다. 내게 현재였던 소설 속 시간이 독자들에게는 오지 않은 미래이고,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의 현재가 내게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난 과거이고, 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내 소설 속의 시간은 끝내 오지 않을 미래이다.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것이다.   p.87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더라도 쉼표가 없으면 안 된다. 쉬지 않으면 쉽게 질리고 만다. 최고의 문장 100개가 모조리 연결되어 있으면 그 어떤 문장도 빛이 나지 않는다. 쉬어가는 문장, 쓸데없는 문장 같은 문장이 조금씩 섞여 있어야 좋은 문장이 더 빛나게 마련이다.   p.94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행동이 위로라고 생각한다. 위로는 죽으려는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 못해도 위로할 수 있다. 나는 '위로'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위로'의 '로'는 애쓴다는 뜻이다.   p.102 대학시절에 좋아하던 노래와 지금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게 아마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 대학 시절에는 음악을 음악으로 대했고 음악의 앞모습만 보았다면, 이제는 앞모습보다 뒷모습 혹은 옆모습을 더 유심히 보게 됐고 음악 역시 사람이 하는 거라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음악을 듣는 것은 사람을 듣는 거로구나. 결국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을 읽는 것이고, 그림을 보는 것은 사람을 보는 것이구나.   p.124 CD에는 10곡 남짓이 들어가지만 MP3 CD에는 수백 곡을 넣을 수 있다. MP3 CD 한 장과 플레이어만 있으면 어디서든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때 처음 알게 됐다. 너무 많은 노래들에는 너무 많은 기회에는 너무 다양한 선택에는 절박함이 없다. 처음으로 음악이 시시하게 들렸다.   p.134 모든 작가는 각각 하나의 완결된 세계다. 생각과 문체와 문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그 세계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지만 그 세계에다가 등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설이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면, 그래서 누군가 밤새 들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세상에는 단 한 명의 작가로 충분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레이먼드 챈들러와 스티븐 킹과 미야베 미유키는 모두 다른 글을 쓰지만 세상에는 그 모든 세계가 필요하다.   p.147 노래를 듣다가 울컥,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데 노래 속의 어떤 단어나 목소리나 멜로디가 불쑥, 귀로 들어오더니 뒷골을 타고 내려가 심장을 후벼 판 다음 재빨리 얼굴로 올라가 눈물샘을 건드린다. 그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내가 어쩌다 눈물을 흘리게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눈물은 얼마나 재빠른지 손쓸 틈이 없다. 흐르고 난 후에야 닦아낼 수 있다.   p.150~152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혼자 차지하던 세계에 타인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타인이 잘 살 수 있게 내 영토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작아지니까 슬픈 거고, 그래서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날 사랑하느냐고, 날 좋아하느냐고' 묻게 된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라면 절대 알 수 없을 감정.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토를 줄여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감정. 함께하는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결코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p.169 막상 마음 먹고 노래를 만들다 보면(생각만큼 만만한 게 아니라서) 좌절하고 말지만, 누군가에게 노래를 만들고 싶게 만드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노래도 아니고, 닿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노래도 아닌, 누군가 만들어 보고 싶게 만드는 노래를 만드는 일은 참 멋지다.   p.180 이야기의 본질은, 어쩌면 사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고 영화를 보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헤메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의 달 아래에서 각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텅 빈 가슴 안고 살아가지만' 때로 서로의 거울이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p.193~194 우리는 대체로 중력을 잊고 산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이야기를 읽고, 노래를 듣고, 사람들의 사연을 듣다가 중력을 느낀다. 그럴 땐 비참하기도 하지만 속시원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결국 우리라는 사실. 다른 무엇이 될 수 없고, 언젠가 여기에서 사라진다는 사실. 중력을 느낀다는 건 그런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날아가고 싶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여기서 그리워하고, 가련해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공기의 무게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이야기와 첼로가 있어서, 비슷한 무게를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버틸 수 있다.   p.204 노래를 듣다 보면 알게 된다. 푸른 바다 속 적막하고 고요하고 먹먹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마음을 보게 된다. 거긴 깊다. 깊어서 좁지만 아늑하다. 몸을 웅크린 채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왜 나였는지 알게 된다. 내가 왜 나였는지 아는 것. 내가 어떤 나인지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밤의 초능력이다. 노래를 다 듣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푸른 새벽이다.   p.223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쓰기 시작했다. 임의로 재생된 음악을 들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쓰려고 했던 게 명확해졌다. 바로 저런 풍경들을 쓰고 싶었다. 가장 기쁜 표정과 최고로 우울한 어깨 사이에 있는 이야기들. 마냥 웃거나 마냥 울 수 없는 이야기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건드리는 것 같은 이야기들, 돌아보면 아무 것도 없는 이야기들.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린 것 같은 미세한 감정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   카페의 스피커에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든 그 노래들만 들려오면 비밀의 문이 열린다. 카페의 벽이 허물어지고, 벽 너머에 있던 풍경들이 가까이 다가서고, 모든 테이블이 사라지면서 세상에 음악과 나와 노트북의 글자들만 남는다. 글자들이 음악과 만나 서로 얽힌다. 글자와 음악이 만나 길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춤을 춘다.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다. 이래서 내가 카페를 떠나지 못한다.   p.229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며 우리가 쌓아가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몇 시간의 기억이다. 밤을 꼴딱 새우며 책을 읽었던 시간들, 처음으로 가본 콘서트장에서의 10분 처럼 지나가버린 두 시간, 혼자 산책하던 새벽의 한 시간. 그 시간들. 그리고 책 속, 공연장, 산책길처럼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서 살짝 어긋나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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