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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iah의 서재
  •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 서윤빈
  • 15,120원 (10%840)
  • 2024-04-08
  • : 792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에서는 버디라는 전도성 문신이 등장한다. 버디는 두피에 새겨지는 문신이며, 버디의 발견으로 인류는 장기를 임플란트처럼 하나씩 갈아 끼우면 영원히 살고 영원히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모든 것을 기억하며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작품의 시작에서 주인공 유온은 단기 연인(戀人)인 서하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자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유온과 만난 서하는 유온과 집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다. 여기서 서하의 죽음은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다. 서하의 사인(死因)은 임플란트 구독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얼핏 유토피아처럼 보였던 세계는 갑자기 돌변한다. 임플란트 장기 구독은 계단식 누진 단계를 취하고 있어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단계가 변동되며, 아무리 노력해서 건강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더라도 구독료를 감당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장기를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할지라도 임플란트 구독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인 배경이 없으면 영원히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누가 그러더라고, 나는 사랑받는 재주가 있다고." - p.126

삶도 죽음도 자본에 의해서 결정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사회로 뒤바뀐 세상. 그 세계에서 누진 2단계인 유온이 살아남는 방법은 '가애'이다. 장기 임플란트 구독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마지막 연인이 되어주는 것이 '가애'이다. '가애'는 '수애'의 사후에 유산을 받거나, '수애'가 특정 가게에서 돈을 쓰도록 한 후 가게에서 인센티브를 받아 돈을 번다. 죽은 이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일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에게 특정 가게에서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점은 호스트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애는 일할 때 벌점을 많이 쌓을 수밖에 없다.

곧 죽을 사람이 건강 따위를 신경 쓰겠는가?

가애는 인생의 마지막을 불태우며 YODO 하는 수애와

함께 다니면서 점수를 엄청나게 깎아먹는다. - p.56


유온의 재능을 눈여겨 본 누군가가 제의로 시작한 '가애'의 삶은 언젠가 누진 단계가 갱신될 유온의 생명을 지속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관둘 수 없다. 누진 단계를 지키기 위해서, '가애'로서 거부당하지 않고 사랑받기 위해서 유온은 몸 관리에 힘을 쏟아붓지만,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수애'들의 삶을 함께하다 보면 도리어 감점 요인들만 쌓이는 현실이다. 살기 위해서 몸을 아껴야 하는데, 돈을 벌기 위해 몸을 깎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유온은 모드(mod)의 조언에 따라 건강한 삶을 위해 수없이 노력한다.



성아와의 만남은 즐거웠으나

그녀는 내 삶을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가애였고, 나보다 재산이 적었으며,

무엇보다 별일 없으면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 p.128


유온은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이기에 늘 사람을 분석하는 계산적인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성아가 나타난다. 성아는 유온이 마음에 들었다며 계산 없이 스스로를 쉽게 열고 만남을 청한다. 성아의 어필로 둘은 두 번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유온은 위의 인용문을 이유로 한 발짝 뒤에 서서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는 위치에서 그녀를 본다. 그러나 성아의 입에서 자신이 '가애'라는 이야기가 나오진 않는다. 과거에 병원과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다는 점이 명확할 뿐이다. 성아의 현재 직업은 몹시 모호하게 처리돼서 '가애'였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과연 유온의 판단은 정확한 것일까? 유온과 성아는 어떻게 될까? 유온은 누진 3단계를 막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사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영원히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대가는 둘째치고, 모든 희로애락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지옥에 더 가깝지 않을까? 삶에는 늘 좋은 일이 있는 게 아니기에, 슬프고 힘든 일들은 잊어버리는 게 스스로에게 더 좋을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서는 유온의 (떠나버린) 아내 이령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스스로 망각을 선택한 자가 죽는 날까지 행복했을지도 문득 궁금해진다.

장기 임플란트와 사랑을 연기하는 직업 '가애'라는 소재를 매력적으로 풀어낸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은 마무리가 친절한 작품은 아니지만, 모호한 안갯속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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