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498페이지의 꽤 두툼한 소설이다.
자살한 아버지와의 다정했던 기억은 그다지 없지만,
아버지의 자살로 죄책감과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는 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가까운 이의 자살은 남겨진 가족을 가해자로 여기게끔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망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 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때문인지, 주변의 성공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인지 소설의 주인공 '닐 주니어'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이혼한다. 그 이후의 사랑전선에서도 내내 삐걱거리며 '가까운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캐릭터이다. 아버지와 풀지못한 관계형성이 끼치는 영향이나 부작용이 아니었을까.
본인이 정말 사랑했던 여자인 '에린'과 사랑도 결혼도 실패한 이후로 그는 어떤것도 자신할 수 없다.
새롭게 만난 사랑인 '레이첼'에게도 미래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못해 망설인다. 항상 그녀를 걱정하고 안테나가 레이첼을 향하고 있지만 쉽게 다가서지 않는다. '사랑'인지 그저 '신경쓰이는 사람'인지의 구별이 쉽지 않다.
아버지의 수십권의 일기를 토대로 '말하는 컴퓨터(인공지능형 채팅로봇)'를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
말하는 컴퓨터 '닥터 바셋'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처럼 느껴진다. 지속적으로 오류도 잡아내고, 자연스러운 대화로 보이게끔 프로그래밍을 통해 진화한다.
생전의 아버지와는 대화도 따뜻한 포옹의 기억도 없지만, 말하는 컴퓨터를 통해 아버지와의 어색한 채팅은 생전의 아버지와의 대화라 여겨질만큼 엇비슷하게 이어진다.
점점 더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닥터바셋'과 채팅을 하면서 그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채팅로봇에게 조금 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기대하며 '분노와 충동'의 기능을 적용했으나 분노의 기능이 너무 강했는지, 아들과의 대화도중 '더 이상 너랑은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서는 채팅방에서 사라진다. 사이버 상의 아버지는 단단히 화가나서 '말하려 하지 않는 말하는 로봇'이 되버린다.
아버지를 다시 채팅방에 등장시키기 위해 어머니를 모셔오고, 어머니와 생전에 있었던 일화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되는데...
닥터바셋과의 점점 진화하는 대화가 재미있었다.
사이버 상의 아버지가 분노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