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직장맘이자 맞벌이인 나에게 큰 공감을 주진 못했다.
전업주부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심지어 전업주부를 동경하는 마음까지 갖고있다.
매일을 주부의 역할에 올인 하지는 않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도 일정부분 주부역할을 맡고 있어서 책의 내용이 이해되기도 했다. 저자의 마음이 짐작가고 고개도 끄덕여진다.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나라면 좀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가까운 이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역할이 제일 큰 몫을 담당하는 게 아닐까! 세상엔 즐거운 일이 참 많은데, 자신에게 재미있는 게 뭔지를 좀 찾아 나섰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대체적으로 '회색 빛'의 분위기가 이끌어 간다. 자신의 고독과 외로움, 우울한 마음을 알아 달라고 호소하는 느낌이다. 남편의 무관심과 역할의 부재도 느껴진다. 그녀의 우울함은 잘 어루만져 주고, 이해해주고 대화를 통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직장인의 생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남편의 행동도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 하고 아파하면 조금 더 들여다 봐주고 신경 써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남편에게까지 과실을 선언한다.
디자인 쪽에 공부를 했던 저자여서, 특히 런던에서 유학을 했던 경력으로 치면 그녀의 재능이 아깝기는 하다. 재능을 썩히고 있어서였는지, 결혼 후에 그녀가 느꼈던 우울함은 복합적이다. 결혼이 주는 행복한 기대감이 무너진 것과 가정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살림, 청소, 빨래, 육아 등)제한적인 일상이 주는 피로함, 무기력함, 출산으로 이어진 몸의 고단함과 산후 우울증. 그 동안 쌓고 길러 온 커리어를 그냥 썩히고 있다는 일종의 상실감. 남편과 시댁생활에서 오는 소외감, 이질감... 이런 복합적인 것들이 노폐물처럼 쌓여 배출되지 않은 채 누적만 되어가고 있었나보다.
책 제목에서도 눈치 챘듯이 여러 그림이 등장한다.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림들이라고 했다. 여러장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두 낯선 그림들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교한 그림들이 낯설고 신선해서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저자의 설명과 관련있는 일화가 곁들여져 이해가 수월했다. 저자의 프레임으로 그림을 해석하며 보고 있자니 그림이 마음 한구석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