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주중의 도서관은 참으로 고즈넉하다. 도서관이
마치 내 것인 양 돌아다니다가, 삐뚤삐뚤 삐져나와 있는 서가의 책들을 슬쩍 줄
맞춰 넣는 재미도 있다. 오늘따라 이 책이 생각나, 서가에서 책을 빼고 묵혀두었던 리뷰를 꺼내 글을 마무리해본다. 나도
이곳 도서관에서 작은 기적을 만났다.
자신을 '도서관이 만든 인간, 메이드 인 라이브러리made in library'라고 칭하는 저자
김병완의 책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을 읽었다. 저자는 11년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가, 꼬박 3년을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만 읽은 후 1년 6개월 동안 폭발적으로 글을 토해내며 33권의 책을 출간했다(이 책 기준). 책 읽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 중 하나라고 말하는 그는 책을 통해 의식의 변화를 일구어내고, 책으로 인해 세상을 다르게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은 건 아니다. 저자의 다른 책 [오직 읽기만 하는 바보]처럼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이라는 책 제목에 끌려
골랐다. 깊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도 소장하고 싶은 책도 아니지만, 그가 인용한 책에 관한 문구들은 틈틈이 블로그와 독서기록장에 적어두었고, 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느꼈던 문장들은 공감으로 남았다.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수만 권에서
수백만 권의 책이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는 특별한 공간, 도서관은 누구라도 새로운 인생으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공간이다.
(p.15)
한국에 있을 땐 그리 자주
도서관을 가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도서관보다 더 가까운 걸음에 헌책방과 서점이 있었고,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걸어가면 대형 서점도
있었다. 빠르게는 한나절이면 집으로 새 책이 도착하는 한국의 택배 신세계에 물들다 보니, 불특정 다수의 손때가 묻어 닳은 도서관의 책들에 눈길을
줄 틈은 없었다.
그런 한국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한국책의 소중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해외여행'이란 이름으로 해외를 여행으로 잠깐씩 다녀오던 것에서, 이제는
'휴가로 한국을' 다녀올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캐리어에 엄마손 반찬과 같은 비율로 때로는 그 이상의 책을 싣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터라, 화물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기내로 실을 책 무게의 부담감이 커질수록, 손에 잡히는 종이책의
약간 묵직함에서 오는 기쁨도 그에 비례해 커졌기에, 캐리어에 한가득 넣고 본다. 이러니, 해외 도서관에서 한국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솜사탕 한 입 문 어린아이처럼 기뻤다고 표현력의 한계를 느끼며 적어둔다. (이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ㅎㅎ)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라는 제목은 내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곳 맥컬리 도서관에 어울리는 제목 같다. 미국 하와이 주 오하우 섬에 위치한
맥컬리 도서관은 해외도서관 중 가장 많은 한국책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다.(작년 기준 약 2만 권 정도 보유, 매년 신간 도서 최소 천 권
입고). 이곳 도서관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예외 없이 놀랄만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지루하게도 나는 도서관에서 취미의 둥지를 새로 틀었다. 다른 액티비티, 볼거리는 그리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도서관에서 외로움을 달랬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주는 숙연함, 그리고 책이 지니고 있는 지식이 무한
축약되어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공간. 인류의 모든 지성이 살아 숨 쉬며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공간을 거닐 때면 책 냄새가 나를 가슴 뛰게
했다. (p.95)
나는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울었고, 책과 함께 웃었다. 그리고 때로는
책과 함께 놀았고, 책과 함께 장난치기도 했다. 때로는 온갖 질문을 책에 던졌고, 때로는 책과 함께 도서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때로는 방대한
책과 함께 춤을 추었고, 때로는 무찌를 수 없는 상대임을 알고 있음에도 책들을 향해 시비를 걸기도 했다. (p.64)
신영복의 유명한 구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조금 더
유해지고 그러면서도 단단해지고 싶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나도 이곳 맥컬리 도서관에서 작은 기적을 만났다.
- 다음으로 함께 읽고 싶은 책
: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 박은진
외
PS) 도서관에만 있기엔 하와이는 날씨가 너무 좋다. 햇빛은 옆으로
쏟아지게 놔두고 그늘을 찾아 등을 베고 누어 품에 한가득 팔에 한가득 빌린 책을 읽고 있노라면 단잠이 쏟아진다. 나는 책에만
빠진 지루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현실성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은 이미 반쯤은 그리된 듯하다. 젊으니깐 봐주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