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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내 놀이터
  •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 에쿠니 가오리
  • 7,650원 (10%420)
  • 2004-09-15
  • : 4,087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신분의 변화(호적상의 변화)와 더불어 살고 있는 곳의 변화일 것이다. 고작 1년 사이에 나는 결혼을 했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남편과 나, 단둘만이 따로 떨어진 것, 우리는 그 거리감에 행복해하면서도 그 거리감으로 인해 가끔 불행해한다(나는 대부분 행복해한다).

 

 이 책은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결혼 생활에 관한 에세이로, 다크초콜릿처럼 쓴맛도 느껴지지만 초콜릿이란 이름에서 기대하는 달콤함도 살짝 첨가된 80% 함유 다크초콜릿 맛 책같다. 작가가 보여주는 그녀 자신 부부는 끝없이 불행한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부부이지도, 러브모드와 해피 바이러스를 내뿜는 마냥 행복한 연인 같은 부부이지도 않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딱 이 만큼이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무심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살아가는 일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도 100% 밀크 초콜릿에 질려 80% 다크초콜릿과 같은 이 책이 다시 생각날 때쯤 나는 웨딩카드를 써야 했고, 마침 책과 어울리는 것 같아 함께 책사진을 찍었다. 담백하기만 한 이 책에서 의외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소개해본다.

 

 

<월요일> 챕터에서 공감 가는 부분,

 

월요일 아침, 나는 회사로 가는 남편이 싫어서 그만 입이 부루퉁해진다. 어서 다음 주말이 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현관에다 구두를 내놓는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난 순간,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 안도감의 물결이 밀려온다. 안도와 피로, 그리고 잠. (...)

현관을 나설 때 그토록 아쉬워하던 아내가, 문을 닫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주말을 함께 지내고 결혼했다. 늘 주말 같은 인생이면 좋을 텐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주말 같다면 우리는 보나마다 산산이 조각나리라는 것을. p.40

 

 

 

<색> 챕터 중 웃겨서 남편이 된 남자친구에게 읽어주었던 부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사람은 왜 서랍을 열어놓고 닫지 않은 것일까ㅡ 내 멋대로 닫으면 실례가 될까, 하고 생각한 것은 백만 년이나 먼 옛날 일이다. 이 사람은 왜 겨우 손만 씻으면서 온 화장실은 물바다로 만드는 것일까, 게다가 왜 젖은 손을 타월에 닦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자기 옷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사람은 대체 왜…….

 

 

그리고 이어지는 공감의 부분

 

정말 나는 몰랐으니깐.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단순함, 남자의 복잡함, 남자의 관용, 남자의 안심. (p.55)

 

 

이 부분도 공감.

 

일요일 오후, 잠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려고 흔들고 잡아당기고 하다가 나도 그만 옆에 누워 잠이 든다. 저녁 늦게, 사방이 캄캄해지고 나서야 실컷 잠잔 어린애처럼 허탈하기도 하고 충족되기도 한 기묘한 기분으로 깨어난다. 왠지 서로의 얼굴을 보기가 거북하다. 둘 다 배가 고파 저녁을 먹으러 외출한다. 색깔이 있는 생활이란 예를 들면 그런 것. (p.53)

 

 

 

 

 

나는 몇 권쯤 이 책을 선물했었다. 결혼한 친구에게,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할 밀크 초콜릿에 가까운 부부의 모습만을 한없이 보이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얼마나 담담히 다크의 함량을 채워나갈지.

하지만 지금의 달콤함이 다시는 맞보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소중한 순간들이란 걸 너무나 깨닫고 있다. 그리고 깨닫고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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