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하는 마음
자네 2022/11/12 15:54
자네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직면하는 마음
- 권성민
- 15,300원 (10%↓850)
- 2022-10-31
- : 400
ㆍ
11년차 직장인 PD가 쓴 일에 관한 에세이. 예능을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사실 요즘 주말 빼고는 TV 자체를 거의 안 봄) 예능 한 편이 방송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 과정에서 PD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알게 됐다. 저자는 ‘분투’, ‘주먹구구’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조금 다르게 말하면, 그냥 한 편의 방송은 어느 PD가 영혼과 육체를 갈아넣어 만든 결과물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표지를 훑어보면서 왜 제목이 ‘직면하는 마음’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작가 소개부분을 봤더니 2012년에 예능 PD로 입사했다고. 이 책에는 PD라는 직업에 대한 저자만의 관점과 철학, 좋아하는 일을 오래, 즐기면서 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직업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자신의 일을 직면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정말 믿기 힘들게도 어느덧 13년? 14년 차 교사인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대답은 당연히 노. 나는 교사로서 왜 나름의 철학도, 원칙도, 하물며 사소한 노하우도, 비판 의식도, 안목도 없을까 생각했다. 직면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목표나 목적 없이 단순히 열심히만 했던 게 문제인가? 책은 가볍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리뷰 쓰다보니 갑자기 심각해짐…
아. 산책가야겠다.
(발췌)
PD가 아니더라도 우선순위를 알고 타협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타협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는 순간은 드물다는 말조차 후하니까.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끊임없이 타협을 거치며 살아가야 한다. 사소한 것 하나도 타협하지 않는 거장은 마스터피스를 남기지만, 사소한 것 하나도 타협하지 않는 PD가 만나게 될 것은 방송사고다. 삶이 거장의 예술이면 좋으련만, 실제로는 완성도를 기다려주지 않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방송시간에 더 가깝다. 삶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나가게 되어 있는 방송처럼. 61
나 역시 처음으로 마지막 장까지 연습장을 꽈 채워 만화를 그렸던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고양감을 느꼈다. 그 순간이 평생 이어진 창작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비록 연습장 속 수많은 장면들은 대체로 엉망이었찌만, 그대로 가고자 했던 장면이 이르기 위해 지난한 과정들을 부대껴 본 사람은 이제 가능성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낸 책은 표지만 보고 상상한 것보다 반드시 더 가치 있는 경험을 선물한다. 자기 두 발로 직접 디뎌본 길은 이제 지도만 봐도 어떤 장면들을 만날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으니까. 108
비루하고 궁색하더라도 결과물이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어떻게 든 한 번 완성해보면 두 번째는 약간 더 할 만하다. 그때 더 괜찮은 걸 만들면 되지. 그렇게 지금 손에 쥔 것들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래서 뭐라도 남기며 전진하는 것. 그게 이 일이 나에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태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실체가 있다면 디디고 나아갈 수 있다. 116
꾸준하면 는다. 재능이 있든 없든, 변화가 느껴지든 아니든, 그냥 때 되면 하고 하기 싫을 때도 하고 성취감이 없어도 그냥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훌쩍 나아가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꾸준함에는 생각이 필요 없다. 160
변수로 가득 찬 세계. 그 어떤 것도 상수가 아닌 세계다. 대중 콘텐츠의 제작만 그러하겠는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직업인들의 세계란 다들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변수로만 이루어진 수학 문제에는 답이 없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면, 물음표로만 채워진 삶은 너무 막막하지 않나. 그게 꼭 정답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기댈 수 있는 답안 몇가지는 있어야 숨통이 트인다. 변수로 가득 찬 세계를 계속 헤쳐 나가려면 발 디딜 수 있는 단순한 상수 몇 개 정도는 쟁여두자. 고민 없이 먹는 방울토마도, 생각 없이 꾸준할 뿐인 필라테스 같은 것들. 인생에는 상수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161
#북스타그램📚 #직면하는마음 #권성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5기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