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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바깥의 희망
  • 생명을 먹어요
  • 우치다 미치코
  • 8,100원 (10%450)
  • 2010-11-25
  • : 93

얼마 전,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봤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후원한 영화라서,

그리고 내가 만드는 책과도 관련이 있어서

꼭 극장 가서 돈 내고 보리라 결심했던 영화였다.

예상대로, 꽤 진지한 문제 제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 싶은 주제였으나, 다소 심심한 구성이었다.

비전문가의 내레이션이 몰입에 방해되는 구석도 있었고,

남편을 너무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좀 걱정되기도 했다.

수의사이면서 조류인플루엔자 현장에 투입된 사람이기도 한데,

그 전문성은 깡그리 사라지고 오줄없는 고집쟁이 아저씨로만 그려 놓은 게 아쉬웠다.

각성한 아내, 육식을 강변하지만 나름 논리를 지닌 남편,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들,

이런 삼각 구조로 갈등을 가져갔다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오지랖 넓은 소리일 뿐이겠다.

 

뭐 아무튼 영화는 공장식 축산과 그렇지 않은 축산을 비교해 보여 주면서

돼지들에게 "공장 대신 농장을" 주자고 이야기한다.

돼지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

좀 더 동물에게 유익한 환경에서 자란 고기를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밀밭을 자유롭게 다니고,

좁은 우리가 아니라 그나마 좀 걸어다닐 공간이라도 확보되고,

사료가 아니라 풀을 먹고,

잠깐이기는 하지만 새끼에게 젖을 먹일 수도 있는 그런 농장의 돼지들은

영화가 의도한 대로, 살짝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고기를 몹시 애정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나 역시, 늘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그나마 해로운 걸 덜 쓴 고기를 먹자, 하고...

그러나 고기가 된 동물 입장에서는 솔직히 생각해 보질 못했다.

나의 이해관계, 내 가족의 안위를 생각하면서 항생제를 쓰지 않고, 자연의 재료를 먹이고,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 자란 고기를 선택했을 뿐,

그것이 사육당하는 동물에게 덜 해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옳다, 하는 가치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동물권에 대해 더 깨어 있지 못했던 것, 반성한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대목은 또 있다.

공장식 축산이든, 유기농 축산이든 먹기 위해 길러지고 결국은 도살당해 인간들의 밥상에 오른다는 결론은 똑같은 거 아닌가, 하는 고민... 

아무리 자연에서 사는 동물에 가까운 형태로 기른다 해도, 그것은 결국 고기를 먹는 인간들의 죄책감을 덜어 주는 면죄부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예 채식을 하지 않고서는 그런 죄의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생협에서 고기를 사 먹는다고 한들 그 죄가 덜어지지는 않겠다, 하는 데 생각이 미치니 그것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고기를 끊을 자신은 없고, 뭔가 문제의식은 갖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

 

영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돼지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채식을 결심하게 된 엄마가 아들에게 채식을 강요하는 방식에 있었다.

이미 고기 맛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채식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고기를 끊으라고 하는 건, 자연스럽지 못해 보였던 것이다. 일종의 폭력처럼 보이는 지점도 살짝...

좀 더 커서 아이에게 선택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해로운 걸 먹이지 않겠다는 엄마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산 소고기를 먹이지 않겠다는 선택과 고기 자체를 먹이지 않겠다는 선택은 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수혈을 반대하는 종교를 가진 부모가, 아이가 수혈이 꼭 필요한 상황인데도 거부하다가 아이를 위태롭게 한 경우가 있었다. 이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부모를 욕했다. 무슨 권리로 아이의 생명을 가지고 그런 위태로운 선택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지 않겠다는 엄마의 선택은 어떤가.

물론 같은 선상에 두고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수혈을 거부한 그 부모 생각이 났다.

때로 신념은 너무 힘이 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내 아이에게 나는 고기를 먹이고 있다.

소아과 의사들은 하루라도 고기를 먹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한다.

그게 진짜라면, 우리 세대는 다 글렀다. 날마다 고기 먹고 산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적당한 회수로, 좋은 고기를 골라, 맛있게 요리해 주되

나중에 아이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얘기는 미리 해 줄 생각이다.

고기를 먹고 사는 잡식 동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인지 말이다.

 

"손녀는 울면서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미야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

자, 어서 먹으렴.

미야에게 고맙다고 하고 먹자꾸나.

우리가 먹지 않으면

죽은 미야에게 미안하잖아.

같이 먹자, 응?'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생명을 먹어요, 52~53쪽

 

기르던 소를 잡은 뒤 그 고기를 가져다 손녀딸과 먹었다는 이야기를 도축업자에게 하는 장면이다. 소 '미야'가 아프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딜레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장면이어서 아이와 나눌 이야기도 한보따리다.

<생명을 먹어요>가 담고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으려면, 아이가 크는 동안 나 역시 계속 용맹정진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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