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희미한 책읽기
어디로 가야할지
비밀을품어요  2015/07/26 17:42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품 같은 책,

소소한 단편 두 편을 한 권으로 묶어놓았다.

 

아마도 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 편승해서 나왔던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백은 많고, 사진까지 넣고,

어찌어찌 한권으로 만들어내려는 꼼수가 보여서

약간은 불편했던 책.

그럼에도 읽고 있는 동안 어떤 동질감이 느껴져 쓰고 만다.

짧은 이야기인데도 클레지오의 문장에는

아름다운 서정이 있고, 그 아래에는 쓸쓸함이 배어나온다.

 

주인공이 어릴적 선망하는 눈빛으로 보곤 했던

빌라 오로라가 있었다.

우거진 수풀에 가려져 있고,

고양이들이 살고 있으며, 가꾸지 않은 정원은

요정이 사는 곳인듯 신비하게만 보였던 곳,

그곳에서 그는 많은 시간 동안

빛을 몸 안에 담으며 보내곤 했었는데,

그런 곳을 어느 순간,

잊고 말았다.

 

내 인생에는 큰 공백 같은 것이 있었다.

왜 나는 어느 순간 벽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는 일도

새 울음소리를 듣고 들고양이들이 달아나는 모양새를 살피면서

가시덤불 사이를 빠져나가는 일도 관두게 되었을까?

그것은 오래 병을 앓으면서

내가 유년기로부터, 어린 시절의 놀이와 비밀들로부터,

길들로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나눠진 두 부분을 결합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사라진 것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나는 몇 년 동안 기억상실에 사로잡혀 영원히 다른 세계로 던져졌고,

내 안에서 사라진 내 반쪽은 그 같은 단절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인사이드 아웃> 초반부를 지루하게 보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온 건 장난감 대륙이 무너지던 때였다.

함께 잘 놀아주던 아빠의 원숭이 흉내에 반응하지 않던 순간

그 섬은 무너져내렸고, 영원히 아이 안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내게도 어릴 적 장난끼 가득하던 때가 있었고,

그것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 상실감은 몹시도 슬픈 감정이었다.

내 기억에서 사라진 그 많은 순간들을

나는 영원히 되찾지 못할 것이다.

 

<오로라의 집>의 주인공은

문득 어린 시절 오로라의 집을 떠올리고는

다시 그곳을 찾는다.

어릴 적 머물던 곳의 모든 것은 달라졌고,

영원히 되찾지 못할 느낌들에 고통과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로라의 집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1년 뒤 그는 관리인이 필요하다는 공고를 보고 그곳의 초인종을 누른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안에 있을,

어릴 적 나와 이어지겠다는 바램.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어릴때 상상속에서 흠모했던

오로라의 집 여주인을 만난다.

주위는 온통 개발 중이었고,

개발업체들로부터 오로라의 집을 지키기 위해

관리인이 필요하다던 그녀의 말을 듣던 그는

죽어가고 있는 그 집을 다시 떠나버린다. 아니, 도망쳐버린다.

빌라 오로라는 점점 무너져내릴 것이고,

어릴 적 그의 공간은 그의 기억처럼

온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제 노부인이 된 그녀는 말했다.

 

"나는 정원 한옆에 남아 있어요.

나는 정말 힘들어요.

몇 번인가 정말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에게 집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고요.

그 사람들이 건물을 완성하는 일을 끝내도록,

모든 것을 끝내도록 말이에요.

그러나 난 할 수 없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아시겠어요.

난 여기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다른 곳은 전혀 몰라요..."

 

그녀의 고통이 전달된 까닭은

최근 내가 종종 중얼거리던 말과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이제 이 일을 떠나야 할때라는 걸 느끼고 있다.

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하고 싶은 일은 대부분 해보고 살아왔는데

그 때문인지 일찍 소진된 열망을 지켜보고 있다.

 

난 할 수 없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