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훌륭한 첫만남’은 그만큼의 실패 확률을 안고 있습니다. 따져보면 모드 생활은 그 하나하나가 만남의 연속입니다. 수업 시간에 만나고, 청소하면서 만나고, 편지로 만나고, 문제 상황에서 만납니다. 첫만남은 그런 만남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첫만남, 첫인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남은 지속적인 상승 균형을 유지할 때 진정한 의미가 살아납니다. 아무리 첫만남이 훌륭하더라도 그 이후의 만남이 소홀해지면 그것은 거짓이요 과장일 뿐입니다. 이것이 첫만남 안에 담겨 있는 어려움입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며서 시작하는 첫만남조차도 그에 걸맞는 만남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빛바랜 일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 공책 첫장은 글씨 획부터 범상치 않으나 서서히 엉망이 되어가는 학생을 불러 그 게으름을 탓하지만 아이들이라고 해서 어른의 ‘부실한 시종일관’을 모르겠습니까?
첫만남 즈음에 선생님들이 자칫 소홀하기 쉬운 것이 또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사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우리 반이 되었을까?’가 아이들에겐 더 큰 사건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만남을 적절하게 주선하는 ‘중매’ 시기를 놓치면 이후의 일은 난항을 거듭하기 일쑤입니다. 경험 많은 교사들은 말합니다.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 안에 열쇠가 있다’ 아이들끼리의 관계를 잘 맺어주는 교사가 곧 훌륭한 교사라는 것입니다. 중,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배려로 좋은 친구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부모와 형제와의 관계 회복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어느 상담 전문가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는 동전이 필요하다. 큰 수표를 헐어 동전을 만드는 노력, 그것이 곧 첫만남을 준비하는 지혜이다. 교실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아이들은 이미 누군가를 맞이하고 그와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숨을 죽이고 앉아 있는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은 그들이 보내는 ‘준비 완료’의 신호이다. 이런 마흔 남짓의 ‘작은 역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수표를 헐어낸 작은 동전-미리 옥석을 가려낸 프로그램과 대안이 필요하다.
첫날부터 일기를 쓴다. 모둠일기와 별개로 학급 전원이 돌아가며 쓰는 학급 일기는 학급역사로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리 예쁜 공책을 준비했다가 첫날 맨 앞번호 아이에게 건네준다. 아이들의 학급일기와 별도로 담임은 만남일기를 쓴다. 일종의 교단일지다.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아이들과 만남, 대화, 관찰 내용을 수시로 메모하다보며 상담 자료로, 교사의 자기 성찰 자료로 거듭난다.
급훈이 결정되면 이제는 실행을 위한 다음 활동으로 들어가다. 학급 내규를 정하는 일과, 반가를 정하는 일, 교실 꾸미기가 그것이다. 이 점은 교사가 특별히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전체 학급운영 계획과 연결되지 않을 때 급훈은 그야말로 ‘왕따’가 되기 쉽다. 급훈을 상위 개념으로 내규, 반가 등이 동일 선상에 놓여야 한다. 그래야 급훈의 실천 여부를 항목별로 확인할 수 있고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다.
학급 내규는 급훈의 하위 개념이다. 아무리 급훈을 구체화 시킨다 해도 급훈만으로 학생들 한명 한 명의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마땅히 급훈을 지지해주는 낱낱의 내규가 필요하다.
아이들과 같이 나도 내 꿈을 적는다. 다 쓰며 아무도 못 보게 반으로 접어서 미리 준비한 큰 봉투에 담은 뒤 밀봉한다. 이른바 ‘꿈봉투’이다. “이 꿈봉투는 학년말에 개봉합니다. 여기 담긴 여러분의 꿈을 현실로 바꾸어주는 요술 방망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노력’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일년 뒤를 기대하겠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모둠의 철학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개인의 역할과 갈등, 발전 원리가 적절하게 장치된 모둠은 사회성을 전제한 ‘작은 존재들의 삶터’입니다. 모둠은 결코 통솔 단위가 아닙니다. 서로의 삶을 비벼 공동체 삶의 가능성을 키워내는 작은 사회입니다. 삶을 통해 배운 교훈은 시들지 않으며,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태여 모둠을 짜고 모둠활동에 숨을 불어넣으려 애쓰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남의 삶을 내 삶과 같은 비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더 큰 삶으로 치달아갈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일기에 대한 답신을 교사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담원’을 뽑아 그들에게 답장 쓰는 것을 맡겨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이른바 ‘문제아’에게 가끔 상담원 역할을 맡기면 뜻밖의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모둠일기의 목소리가 교사를 향하게 하기보다는 아이들 자신을 향할 수 있도록 조절해서, 서로의 고민과 현실, 꿈과 위안을 나누어 갖는 ‘그들만의 장’으로 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