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동화집.
다분히 SF 적 제목인 '마법에 걸린 도시 팔둠' 에 저자가 헤르만 헤세라........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조합으로 큰 기대없이 시작했다가
첫 작품부터 빵 터진다.
이거 누가 봐도 너무나 헤르만 헤세의 작품.
동화든 소설이든 자기 색깔이 확실한 양반.
'데미안' 이 1919년에 쓰였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리알 유희' 가 1943년 작품이니
작가 헤르만 헤세의 황금기는 1900년대 초중반으로 볼 수 있겠다.
그 시절을 감안하면 마법에 걸린 도시 팔둠은
SF 라기보단 환상, 상상에 가까운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실제로 환상동화라고 부른다니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듯.
모두 6편의 동화가 실려있는데
- 난쟁이와 사랑의 묘약
- 아우구스투스
- 유 임금님
- 픽토어의 변신
- 마법에 걸린 도시 팔둠
- 두 형제
나를 빵 터지게 만든 작품은 '난쟁이와 사랑의 묘약' 인데
헤르만 헤세 특유의 빌드업 과정이 동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설의 요약본같은 느낌으로 길이만 짧아졌지
전형적인 등장인물에 전형적인 사건을 모아 주제로 나아가는 방식이
'수레바퀴 아래서' 와 비슷해서 웃어버렸다.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이 궁금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드는 힘까지 비슷.
"아우구스투스" 는 마음이 무너진다.
아이가 평생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기를 소원했던 엄마.
그 소원이 엄마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지만
아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아들은 반대의 소원을 빈다.
아들은 남루하고 초라한 삶을 살게 되지만 행복했고,
행복하게 엄마에게 돌아간다.
"유리알 유희" 같은 깊은 울림.
엄마가 바라는 자식의 행복이란 게
반드시 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조용히 지적한다.
가장 충격적인 동화는 "유 임금".
중국 주나라 유 임금과 포사의 이야기다.
포사를 웃기려고 비단을 찢고 봉화를 올리다가
정작 위기 상황에서 아무도 오지 않아 죽었다던 그 임금의 이야기를
독일 소설가의 동화에서 만나다니!!!!!!
정작 표제작인 "마법에 걸린 도시 팔둠" 은 덤덤하다.
"픽토어의 변신" 에서 이미 자연 친화적인 작가의 모습이 드러난데다
마법의 힘을 빌어 "산" 으로 변신할 때 이미 느낌이 와버렸음. ^^;;
헤르만 헤세는 동화를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썼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마법의 힘을 빌어서라도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 것일까?
마법을 통해 소원을 이뤄주는 이야기가 절반 이상이고
그러다보니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잊지 마시라.
이 아이는 동화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읽어줘야 하는 것.
나는 저자의 유명세에 갇혀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실 다른 분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