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
날은 좋은데 멀리 떠나기 어려운 이 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했던 책.
학예사가 쓴 "절" 이야기다.
절의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걸어들어가는 느낌.
절 앞의 무지개 다리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주변 부속(?) 건물이며 불상, 그림(탱화)까지.
실제로 절의 경내를 함께 걸으며 설명 듣는 것 같다.
기분만 그럴까?
사진 자료가 빼곡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이건 사진집이 아닐까 의심될 지경이면 말 다했지.
건축물은 풀샷으로,
그림은 중요 부분만 별도로 확대해서,
조각물은 하나씩 따로 떼어 보여준다.
사진만 봐도 손해날 거 없는 책.
나는 기독교 신자다.
종교적 문제로 '절' 에 대한 거부감같은 건 일절 없지만
'불교' 적(?) 지식이 없다.
저자가 열심히 탱화를 설명하는데 '문수보살' 정도의 이름만 알지
나머지는 도통 모르겠는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반대로 생각하면
불교 신자가 읽었을 땐 내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차오를 수 있지 않을까?
중세 유럽에서 글을 모르는 백성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을 이용했다는 건 상식처럼 알고 있으면서
불교에서도 그림을 통해 부처의 삶을 보여주고 있단 사실에 놀라고,
불상의 얼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는 것에 또 놀라고,
인물의 이국적인 모습에 다시 놀라는 경험의 연속.
놀라움과 놀라움 사이에서
고즈넉한 절의 모습과
그곳을 여행했던 추억이 교차하며 흐뭇한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쉽게 쓰인 것 같은데 상당히 전문적이었던,
아름다운 우리 절을 걷다.
순천엘 가야겠단 생각이 자꾸 들게 만든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