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었다.
읽으면서 고생을 쫌 했는데,
그것이 괴테가 나랑 맞지 않은 건지,
번역이 걸리적거렸는지,
책 자체가 어렵고 힘든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읽기도 전에 포기할 뻔 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좋은 작품을 그렇게 놓쳤겠다 생각하니 아찔하다.
소설인데 붙임딱지와 색연필 모두를 이용해서 읽었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그들을 믿지 마시라.
베르테르는 부를 축적한 시민 계급 출신이다.
사회적으로 대접은 받지만 영주와 귀족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절이라 신분의 차별을 은근히 느껴야 했다.
자신을 아끼던 백작의 집에서 식사를 하던 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에 그냥 그렇게 있었는데 그것이 귀족들의 파티였던 것.
사람들의 어색함과 흘끔거림을 느끼던 때, 백작에게 떠나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젊은이.
백작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동네에 퍼져 동정의 대상이 되고 만다.
서민 동네에서도 쉽게 섞일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곳의 활기찬 모습을 좋아하는 베르테르는 자주 그곳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동전을 주곤 한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는 베르테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사랑의 대상 - 로테의 동생들과 뒹굴며 놀 정도로 아이들을 아낀다.
시간과 경제력을 적당히 사용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여기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키운 양배추를 식탁에 올리는 기쁨을 아는 청년.
자신의 열정과 욕구로 일해야 한다는 직업관까지 정확히 가진 그는
기성세대로부터 "요새 젊은 것들" 이라는 손가락질 받기 딱 좋은 캐릭터였다.
로테 곁을 떠나 일하게 된 곳에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상사와 끊임없이 부딪치다 끝내 그만두고 만다.
다시 돌아온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사랑은 커져만 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알베르트가 로테의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셋의 균형은 깨진다.
천성이 착하고 순수한 사람.
사려깊고 주관이 뚜렷했던 사람.
청년다운 진보정신. 열정과 패기가 있었으나
사회, 정치가 아닌 한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뻗어나간 사람.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러나 사회가 정한 규범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더 잘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면서 열정이 넘친 청년은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소설이 발표된 후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젊은이가 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직접 책을 읽기 전엔
치기 어린 객기로 사랑을 빙자한 낭만을 흉내낸 것이 아닌가 미뤄 짐작했는데
책을 읽고나니 사랑도 낭만도 객기도 아닌 '젊음'이 그들을 죽였다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역시 베르테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젊은" 이 포인트는 아니었을까.
너무도 매력적인 청년 베르테르.
로테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세상을 향해 침을 뱉지 못하고 자신을 죽인 젊은이.
그의 생각에 너무 많이 공감해서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가 주구장창 편지를 쓰는 친구 이름이 빌헬름이어서 깜짝 놀라고
너무 매끄럽게 잘 읽혀서 두 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