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포(大紅袍)
1.
마침내 황제의 칙사가 암벽 아래에 도착했다. 칙사는 말에서 내려, 황금색 상자를 경건하게 열었다. 상자 안에는 황제가 직접 쓴 교서(敎書)가 붉은 비단 위에 놓여 있었다. 칙사는 황제의 교서를 읽고 나서, 자신이 데려온 무관들에게 명하였다. 체구가 작고 날렵한 무관들이 기다란 비단을 몸에 감고,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절벽 위에 매달린 차(茶)나무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 감은 피같이 붉은 비단을 풀어내어 차 나무에 덮어씌웠다.
2.
새로 쓰기 시작한 단편 소설은 처음 써놓은 한 단락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말을 잃어버린 눈사람처럼, 바보처럼 그렇게 소설은 멈춰 서있다. 어떻게 이 글의 멱살을 잡고 나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이 소설은 SF이며, 주인공은 눈알이다. 그렇다. 그런데 사람의 진짜 눈알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 만든 정교한 인공 눈알이다. 눈알의 주인은 시한부 암 환자이며,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 국경 지대로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신의 인공 눈알을 떼어놓고, 자유를 준다. 하지만 눈알은 주인과의 이별을 감당할 수 없다. 떠나버린 주인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눈알은 과연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도대체 내가 왜 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소설을 왜 쓰려고 하는지 여전히 생각 중이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단순한 물리적인 것이 아니며, 감정적이며 유기적인 면이 있음을 말하고 싶기는 하다. 그런데 어떻게 눈알이 여행할 수 있는지 생각을 해보는데, 자꾸만 눈알이 굴러가는 장면만 떠오른다. 눈알은 구르고 구른다. 눈알도 옷을 입고 있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처럼 낡은 모자를 쓰고, 올이 너덜거리는 망토를 두르고 있다. 눈알은 어떻게 이동하지? 글은 거기에서 막힌다.
3.
동생이 중국 출장에서 사 온 것이라면서, 차통(茶桶) 하나를 두고 갔다. 온통 한문으로 되어있는 그 차통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한문은 '대홍포(大紅袍)'이다. 나는 차통 뒷면에 가득한 한자들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런 다음에 구글 렌즈를 켜고, 번역 버튼을 누른다.
'이 차는 우롱차이며, 품질 수준은 최고급이다. 원산지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나는 찻잎을 들여다본다. 기다랗고 삐죽삐죽한, 검은색에 가까운 찻잎이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다. 이 찻잎은 좀 볼품이 없다.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어 마셔본다. 밋밋하고 슴슴하다. 별다른 향도 없는 듯하다. 그래, 차는 대만의 우롱차가 제일이지. 나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진하게 우려낸 보리차 같은 대홍포를 심드렁하게 바라본다.
그런데 별로 특별한 맛도 없는 것 같은 차에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이 차를 마시고 나서는, 다른 차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계속해서 이 차만 마시고 있다. 기이한 점은 대홍포의 찻잎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차를 우려내고 나서 버리는 찻잎은 부드럽게 물크러지기 마련인데, 대홍포의 찻잎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우려내지 않은 마른 찻잎처럼 매우 뻣뻣했다. 찻잎은 찢어지지도, 물러지지도 않았다. 나는 이 보잘것없는 찻잎에서 일종의 근성(根性)을 느꼈다. 그랬다. 이것은 이 차의 성질이며 근원적인 본성이다.
높은 절벽 위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암벽을 타고 흐르는 물을 빨아들이며 자랐다. 대홍포의 중국어 위키 항목에는 이 차가 명나라 황후의 병을 낫게 하였으므로, 황제가 차나무에 붉은 비단옷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물론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이 절벽 위의 차 나무는 중국 차의 전설이 되었다. 중국에서 대홍포 차나무의 가지를 꺾어 재배에 성공한 시기는 1980년대였다. 그러니까 오늘날 '대홍포'로 유통되는 모든 차는 그 절벽 위 대홍포의 후손인 셈이다.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차나무의 기개랄지 근성이 찻잎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왜 계속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는가? 이 손톱만 한 찻잎에 있는 도저한 끈기가 과연 나에게는 있는가? 나는 대홍포의 찻잎을 수채에 버릴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이번 달이 마감인 SF 단편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쓰기를 놓지 않겠다는 마음은 높다란 절벽 위, 해가 무지막지하게 내리쬐는 뜨겁고 메마른 그곳에 여전히 매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