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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이는 창가
 

빗방울


세탁실에서는 비가 샌다
나는 여러 개의 바가지를 갖고 있다
비가 샐 때 쓰는 커다란 바가지
빗방울이 구불구불 기어다닌다

빗방울은 작고 동그란 입으로
가난, 이라고 외치고 다닌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빗방울의 입을
있는 힘껏 틀어막으려 했지만
빗방울이 내 손목을 꺾어버렸다

빗방울이 튄 세탁기가 소리를 질렀다
꺼억꺼억, 다 죽어갈 것처럼
세탁기는 사실 죽을 때가 되었다
이십 년을 살아온 세탁기는
요새 쇳조각을 뱉어내고 있다

빗방울이 바가지를 밀쳐내고는
삐딱하게 웃으며 말한다

죽는 게 낫지

오늘도 뜨개질을 한다
빗방울의 기대가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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