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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론틴(Neurontin®)


A는 아침에 눈을 뜨자 왼쪽 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감전된 듯한
찌릿거리는 느낌이 팔을 지배했다 A는 특별히 팔을 쓰는 운동을 한 적도
없고, 최근에 무리하게 팔을 쓴 적도 없었다 A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팔이
아플만한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
A는 한 며칠 더 두고 보기로 했다 하지만 팔의 통증은 낫기는 커녕 갈수록
심해졌다 하는 수 없이 A는 신경과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고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증을 경감해주는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복용해 보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A는 의사가 내어준
처방전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뉴론틴(Neurontin®)이라는 약 이름이
써져 있었다 뉴론틴, 이 약은 1973년에 제약회사 화이자(Pfizer)가 개발한
항경련제(抗痙攣劑)이다 뉴론틴은 간질(癇疾) 환자들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약제였다 왜 나한테 간질 환자 약을 주는 거요? 신경과 의사들은 뉴론틴
처방전에 불만을 품은 통증 환자들의 항의를 자주 받곤 한다 이제 간질이라는
병명은 뇌전증(腦電症)으로 바뀌었다 말이 나온 김에 간질이라는 병명에 대해
말하자면, 한자의 간(癇)은 그 자체로 간질을 가리키는 매우 중립적인 글자이다
부수에 해당하는 병질 엄(疒)은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간질이라는 병명이 가진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뇌전증으로 바뀌게 되었다
뇌전증을 풀어쓰면 뇌에 번개 치듯 전기가 오는 병이란 뜻인데, 역설적으로 그것은
간질이 뇌의 기질적인 질병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뉴론틴은 그 뇌전증뿐만 아니라
신경병성 통증에도 잘 듣는다 예를 들면 대상 포진(帶狀疱疹)을 비롯해
대상 포진 후 신경통과 허리 디스크 같은 병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약에는
나름의 부작용이 있다 A가 뉴론틴을 먹기만 하면 졸음이 미친듯이 쏟아졌다
거기에다 뭔가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오랫동안 책을 읽는다던가
영화를 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뭔가 생각을 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그 생각들이 조각조각 잘게 부서져서 어디론가 금세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뉴론틴은 과도하게 흥분된 신경을 둔감하게 만들어서 통증을
조절하는 약인 셈이다 팔의 통증 때문에 A가 뉴론틴을 먹기 시작한지
어느덧 2년의 시간이 다 되어간다 A의 시간은 느리고 고통스럽게 흘러갔다
오늘 저녁에도 A는 여전히 저리는 팔을 느끼면서 뉴론틴을 한 알 삼켰다
A는 뉴론틴이 없는 미래의 어느 하루를 생각해 본다 팔이 아프지 않고
졸음이 쏟아지지 않으며 신경을 곤두세우며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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