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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것은 차이를 아는 것이다.

p20

 살아 있는 한 언제나 배움에 열린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나에게 조나단은 훌륭한 스승이자 동료였다. 배우는 것은 태어나는 것에 속한다고 말했던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무언가 다른 것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 조나단은 비행하는 법 뿐 아니라 친절과 사랑에 대해서도 수련을 받았는데, 그가 사랑을 펼치는 모습은 키냐르가 한 말과 꼭 닮아 있었다.

 ......

 조나단이 알게 된 진실이란, 우리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아닐까. 그 자유란 부단한 노력과 수련을 필요로 하는, 고단하고도 지난한 과정 끝에 얻게 되는 무엇일 것이다. 끝없이 도전하는 조나단을 보면서 자기와 타협하지 않는 치열한 태도가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게 하는 한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하나, 배움을 사랑하는 일에는 자신이 배운 바를 베푸는 일까지 포함된다는 것도 배운 걸 나누려는 마음이 곧 사랑을 베푸는 일인 것이다.

p30

 나와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안에 들어왔다 나가면 신기하게도 살아갈 힘이 났다. 내 안에 쌓인 고민이나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견딜 만해졌다. 삶이란 무릇 그런 것이라는 걸 그 이야기들이 알려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그냥 좋았다. 책이 보여주는 그 깊고 넓은 세상이. 책을 향한, 오래도록 지치지 않을 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던 시간 속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씨앗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 그걸 떠올릴 때면 삶은 참 알 수 없고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p33

...무언가를 얻는 대신 다른 무언가를 잃어야만 하는, 성장 과정에 수반되는 모종의 상실을 그는 '성장'이 아니라 '변화'라 불렀다. "물론 성장의 과정에 이런 부수적이고 불행한 상실"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따르면 그것은 성장의 본질이 아닐뿐더러 성장을 바람직하게 만드는 요소도 분명 아니다. '변화'란 어떤 의미에서든 이전과의 단절을 나타내지만, '성장'은 나이테처럼 덧붙여나가고 포함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레몬스쿼시에 대한 입맛을 잃어버린 다음에야 호크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자신이 소설가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 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단순한 변화일 뿐이라는 그의 말이 나에게 엄청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발육부진이나 도태로 받아들이는 것들 역시 변화를 성장으로 오인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라는 그 명쾌한 지적이 후련했다.

p37

...오늘 아침 읽은 다니엘 페나크의 책 속 한 구절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와 나누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사랑하는 일을 오늘도 게을리할 수 없을 것 같다.

p51

...드라마는 엄마에게 일종의 숨구멍이자 해방구였다.

나도나도!

p53

나는 타인의 책에 관심이 많다. 더 정확히는 누군가 읽고 있는 책, 읽으려는 책, 또는 그들이 빌리거나 산 책.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는 엄마의 관심사가 남의 집 식탁이나 냉장고라면, 내 관심사는 남의 집 책장 정도가 되려나. ...

p94

나는 무척이나 허약한 몸으로 놀랄 정도의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과중한 근심은 전연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무엇에 헌신할 때 사람들은 왜소한 자연의 한계선을 넘어서서 자신의 힘보다 훨씬 더 위대한 힘의 결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나도 내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에 헌신함으로써 이통증을 잊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p99

...아스트리드는 사랑받는 동화 작가였을 뿐 아니라, 좋은 작가들과 귀한 이야기들을 발굴해낸 탁월한 편집자로서도 활약했다. 그리고 멋진 시민이기도 했다. 조세 문제의 모순을 지적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한 것은 물론, 현실 정치에 개입하여 동물 복지, 아동체벌, 난민 문제 등의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p104

 그러고 보면 반복되는 우리의 하루하루엔 그냥 계속하는 자세로 임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지 않은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크고 작은 일들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마음먹을 때면 꼭 거짓말처럼 생각지 못한 여러 어려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의 다짐과 각오를 무력하게 하는 변수들을 뚫고 그냥 계속해나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이렇게 그냥 게속 하기를 멈추지 않다 보면, 어느 순간은 아스트리드가 자주 편지에 썼던 문장처럼 삶은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p120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어.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 솔닛의 표현에 비추어보면 마리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인 것 같아. 듣고 질문하고 멈추는 행위야말로 마리가 가장 잘하던 일이었으니까.  

p126

...새로운 도약과 변화의 연속으로 보이는 지난 시간 아래엔, 사실 지리멸렬하고 지긋지긋한 날들이 있었다. ...

p128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문제보다 내 힘으로 변화 가능한 일들을 더 자주 생각하게 했다.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조바심을 천천히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이나 다른 이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로는 그렇게 들려주고 그저 듣는 것만으로 충분해지기도 한다....

p133

 내게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자꾸 더 쟁이려는 습성이 있다. 흡사 '잡은 물고기에는 밥 안 주는 사람'처럼. 당장이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책을 구입하지만, 막상 집에 도착한 책들은 언제든 펼쳐볼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인지 그 관심이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습관은 우리 집 책장의 책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다. 대출 기한이 정해진 도서관 대여 도서를 먼저 읽다 보니 자연스레 구매한 책의 독서가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 홀대의 시간이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내 안에서는 소장 중인 책을 읽으려는 마음과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자주 충돌한다.

p140

 여느 편지들처럼, 두 사람이 나눈 편지에도 대단한 이야기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가 더 많다.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몸은 좀 어떤지, 생활은 힘들지 않은지, 춥지는 않은지, 돈이 필요한 건 아닌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나는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것만큼이나 이런 이야기들이 좋았다. 끼니와 추위와 금전적 형편과 몸 상태 같은 이 사사로운 것들이야말로 외면할 수 없는 매일의 일상이고, 우리 삶을 이루는 본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느덧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p142

 ...나에게 '잘 사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아픔을 잊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그저 묵묵히 해나가는 것, 말이다. 아파도 또다시 날은 밝고 하루는 시작되고 우리 앞에는 삶이라는 시간이 주어져 있으니, 우린 매일 성실하게 밝아오는 하루를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프고 고달파도 그렇게 살아지고 또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는 메시지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자기 몸이라는 가장 궁극의 자연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자연을 향한 태도란 무릇 자기 몸이라는 자연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그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만 나는 내 몸이라는 궁극적인 자연을 잊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그것을 잊으며 살고 싶기도 하다. 내 몸의 일상적인 통증들에 너무 오래 붙잡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p168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려 애써왔다는 것도. 귀한 것을 귀하게 지켜내려는 마음속 의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게 한다. 그리고 삶이 비로소 바뀌는 때에, 망설임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직감과 용기를 준다. 될까? 될 거야, 가자!

p178

...가치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항상 삶의 다른 요소에 우선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건 그것이 가치 없어서라기보다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거나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아서일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의 태도에서만 문제를 찾을 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탐구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거창한 가치나 주의 주장 앞에서는 언제나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p180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함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하다고, 그러기 위해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이 만남은 우리가 더 훌륭해지기 위해서가 아닐, 삶의 어느 순가에 꺼내 먹을 수 있는 작은 쿠키 같은 기억을 차곡차곡 쌓는 데 있다고, 나에게 말한다.

p181

내가 운영하는 독서교실 이름은 '소소'다. 작을 소 두개가 나란히 붙었을 땐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지만 밝을 소 두 개가 만났을 땐 '밝고 환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한다.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서 이 말이 더 좋아졌다. 작고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밝은 기운을 얻을 때가 많아서인지 내게는 두 개의 뜻이 마치 한 단어에 잘 포개져 있는 느낌이다.

p203

같이 걱정해주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어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망연자실했을 때 한 마디 해주면서, 등을 쓰다듬어줘요. 

영혼을 위로해주는 거죠.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잊어버렸어요. 모다에가미.

생각낫어요. 모다에가미가 고통을 같이 나눠줘요.

.....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하다못해, 한과 슬픔을 나누겠다는 거죠.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남 걱정을 해대며 자기 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그런 사람을 모다에가미라 부른대요.

p224

 좋은 사람이라는 게 실재하는지, 무엇이 좋은 사람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이런 노력은 멈추지 않고 싶다. 남들은 모르더라도 나만은 알고 있는 부끄러운 기억을 부적처럼 안고 사는 사람. 달라져보려고 애쓰고, 그러다 더러는 스스로에게 실망 하면서도 다시 시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 가슴이 크면 등도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마음에 품고, 늘 더올리면서, 그 모습을 천천히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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