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대단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끝까지 걸어가기. 주저 없이 마침표를 찍은 후에는 다시 시작하기. 충실한 마음과 소박한 기쁨으로 제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의 고백을 건넨다...
p29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부 패거리에 들려는 욕망이 있다. 내부 패거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느 집단에나 비밀스러운 토론이 있어야 하고, 폐쇄된 우정도 필요한 법이니까. 문제는, 그 패거리에 들지 못해서 버둥대는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아닌 저 너머의 내부패거리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태도는 스스로를 파괴한다. '내부 패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 '내부 패거리주의자'로 전락해 내부 패거리의 꽁무니만 좇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내부 패거리가 될 수 있을까? 순수한 마음으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집단 내부에 속하게 된다. 저명한 내부 패거리에 간신히 속하게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내부 패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에 순수하게 몰입할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작은 무리. 그 안에서 천진난만하게 지내는 모습을 누군가 외부에서 관찰한다면, 나 역시도 단단한 패거리 안에서 안정을 누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놀랍지 않은가? 내 앞에 놓인 일을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업무의 가치를 높이는 데 ㅈ비중하는 것.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이들과 솔직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작고 단단한 링을 만드는 것. 그 소중한 패거리와 진하게 위로를 나누며 기운을 충전하는 것. 그야말로 완벽한 '회사생활'혹은 '사회생활'인 것이다.
p45
그렇다. 나는 나만의 볼륨으로, 나만의 사이즈로, 나만의 공간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다. 이걸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따지고 보면 별게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다 비슷하고, 알면 알수록 별게 없다는 걸 깨달은 것도 크리스마스 때의 일이다. ...
p51
맞닥뜨린 모든 일에서 의미를 구하고, 해석된 메시지를 가슴으로 껴안아 저장해 두는 INFJ. 바로 나다. 나는 주어진 상황의 앞면, 옆면, 뒷면에 적힌 내용은 물론이고, 행간에 숨겨진 암호까지 소화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쓴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삶이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밤새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면, 스위치를 그듯이 잡념도 팍 꺼버리고 싶다.
미치도록 지루한 어느 날에는, '아, 맞다!' 그때 하려고 했던 그 생각들 좀 꺼내서 해보자!'라며 머릿속 선바에 놓인 잡념 하나를 골라 든다. 귀퉁이를 접어 놨던 페이지를 촤라락 펼치면 지루할 틈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앉아 멍 대리는 것 같지만, 나는 '못다 한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겨우가 많다.
p56
...내가 배운 대로만 키우면, 아이는 잘해야 나 정도로 클 뿐이다. 아이가 자신만의 트랙에서 더 멀리 더 높이 날려면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손을 놓아야 한다. ....
p77
"네가 가진 노래를 부르려마. 난 미리 걱정하지 않는단다."
p85
가능하다면 애틋한 누군가와 함께 차분한 겨울 여행을 해보기를 권한다. 먼 곳에서 가장 가까운 너와 나를 깊이 헤아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서로의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행. 나에게 넘치는 것과 그에게서 가물어가는 것을 발견하며 우리가 지금 함께인 이유를 개닫는다면, 겨울 여행이 가진 미덕을 다 누린 셈이다. 삶은 디테일에, 사랑은 겨울 여행에 있다.
p94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에게 삶은 한낱 골칫덩어리에 불과하고
애처로운 사연만 헤아리는 사람은 눈물바다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겨울엔 최대한 반짝이는 눈으로 명장면을 꼽는다.
절묘했던 명장면이 넘쳐나는 한, 올해는 내게 작품으로 남을테니.
p109
...나이가 들어서 삶의 방식을 리노베이션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틈만 나면 늘어져서 배달 음식이나 시켜 놓고 유튜브를 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만의 계절 스포츠와 계절 문학, 계절 음료를 즐기는 사람으로 바뀔 순 없는 노릇이다. 이것저것 잠깐씩 시도해볼 순 있겠지마, 10년,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삶의 모양을 잡아 나가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p114
그렇다면 어른들에게 울음이란 더 이상 언어가 아닌 게다. 오히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는 치부에 가깝다. 방귀나 트림처럼 당연한 생리현상이지만 되도록이면 시치미를 떼야 하는 행동처럼. 그래서 우리의 울음은 멀리 퍼져나가지 못하고 오직 울고 있는 자신만이 보게 된다.
p118
...성공을 해도 내 결정 끝에 성공해야 기쁘고 망해도 내 선택을 따라 망해야 억울하지 않다는 것을.
p120
당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른이 된 자신을
다시 한 번 잘 키워보는 일과 동시에 일어난다.
아이와 나를 위해 하나씩 쌓아가는 계절 이야기.
p122
하지만 명심해야 할 성은, 이 세상 어딘가엔 우리만큼
겨울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태어난 순간 이미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선물도 받지 못한 어린이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야 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어야 한다.
어른이 된 네가, 누군가의 산타가 되는 일을 마땅히 여긴다면,
내가 성실히, 또 정성껏 겨울들을 지내온 보람이 있겠다.
p132
...어른들은 쌓아온 삶의 데이터 덕분인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다음에 펼쳐질 시나리오. 내일 일어날 일, 먼 미래에 생길지 모르는 사고들을 다 내다봅니다. 그래서 더 참을 수 있고, 더 준비할 수 있고, 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도 이제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이가 어쩜 이렇게 내일 일을 모르고 눈 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p135
우리가 자녀에게 쉬이 하는 핀잔인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른다'는 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도 들려주어야 할 조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혹은 반대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간 끝에 무엇이 펼쳐질지, 불행의 구간을 지나면 어떤 삶이 시작될지 혹은 그토록 잘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좋은 부모가 자녀를 일부러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듯, 삶이 이끄는 방향을 믿고 다르다 보면 감사할 날이 올 거라는 사실입니다. 나도 모르는 내 인생의 원대한 게획, 보이진 않아도 믿을 순 있습니다.
p138
...아이가 컸으면 하는 방향대로, 내가 지금을 살자. 이것이 내 사랑하는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강력한 유산이 될 테니까.
p146
The lines of my boundary have fallen in pleasant places.
즐거운 곳을 딸라 그어진 내 삶의 구분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갈등이나 불안은 나와 남의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그러니 괜히 남과 비교하고 상처받으며 스스로를 불안에 가둬서는 안 된다. 남의 불행을 보며 자신의 행복을 확인해서도 안 된다. 내 마음이 남의 삶으로 자꾸만 넘나들 때 떠올려야 하는 것이 바로 '구분선'이다.
p158
문제는 겨울에만 목마름을 해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속도를 완전히 멈추고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린 다음에, 내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는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 점검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겠지. 어떤 이유로든 멈춰 선다는 건 실패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p164
'어른'이라는 인생 챕터로 들어서며 바뀐 것이 하나 있다. 과정의 힘을 믿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땐 우주의 기운을 끌어 모아 한순간에 판을 엎어버리는 '인생 한 방'같은 에너지를 믿었다면, 이제는 하루치 노력을 꾸준히 더하면 일년씩 쌓은 힘을 신뢰한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결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떤한 '과정 '중에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p166
...애초에 시간이라는 것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떼어다 버릴 수도 없다. 애써 '망한 셈 치고 잊어버린 시간'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실은 '망한 셈 치고 잊어버렸다고 착각하며 허비한 시간'으로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산 시간의 총합이 나의 역사가 되고, 그것이 현재의 나 자신을 이룬다. 그러나 회사에서 보내는 여덟시간도 소중히 여기며 그 시간의 주인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
p170
시간이 가져다준 귀한 것들을 헤아려보며 지나온 과정의 힘을 아는 이들은 떠들썩하게 굴지 않는다. 삶의 과정을 손수 굴리며 생에 집중할 때, 비로소 사람은 존재감이 또렷해진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여기저기 떠도는 모습은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드러낸다. 이 동네 저 동네 기웃거리며 반경 내에 나보다 나은 인물이 없음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믿는 바를 한 겹 두 겹 성실히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로, 나 자신에게만 나를 증명해 보이면 되니까. 그 과묵한 신뢰가 누적되어 고도로 정제될 때 비로소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고 믿는다. 그 지경에 닿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내가 그 과정에 잇음을 나 자신에게 확언하고 또 확언한다. 지난 겨울들을 굴리고 굴려 올해의 겨울을 맞이했음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이 계절, 이 과정, 이 생에 집중하자. 조용히, 특유의 존재감으로.
p181
...도무지 언제부터 뿌리내린 건지 짐작하기 힘든, 이 깊고도 단단한 착실함으로 오늘도 한 칸씩 채워가는 모두에게 이 책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