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사회의 본질은 AI로 바뀌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신체가 없어서?인간의 정정하는 힘은 신체적 행위를 이용하기도 하니까.
인공지능이 신체를 갖게 되면 인간이랑 같아지니까. 결과적으로 사회의 존재양식에 변화 못 줄거라는데, 맞는 말 같지만 약간 궤변 같기도 하다.
그것 자체가 본질이 다른 거 아닐까.
- 어린이가 그린 그림의 가치
인가은 콘텐츠가 뛰어나다고 꼭 감동하는 건 아니다.
인간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 그 내용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등의 부가 정보도 동시에 소비한다. 그것이 작가성이다.
인간은 콘텐츠의 내용과 부가정보를 함께 소비하는데 평소엔 자각하지 않는데, 아트 마켓처럼 특수한 곳, 또는 자기 아이의 그림같은 극단적인 사례에서 이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 '작가성'의 재발견
뛰어난 콘텐츠를 저렴한 가격에 무한정으로 만들 수 있는 AI사회에서는 내용과 부가정보의 격차가 문제가 될 것이다. 즉, 작가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리 뛰어난 콘텐츠를 창출해도 스토리성을 부가할 수 없다면 상품으로 성공할 여지는 제한적일 것이다.
- 사람은 사람에게만 돈을 쓴다.
주목 경제, 주목 받으면 돈을 벌 수 있다. 주목 받는 대상이 된 것은'작품'이 아니라 '사람'.
프로의 능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복제할 수 있게 되면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프로나 아마추어냐가 아니라 제공하는 이의 존재감에 좌우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 문화산업의 큰 전환점인 건 분명하다.
- 겐론카페의 '신들림'
의외성의 발견, '사실...였다'는 발견. 겐론 카페가 파는 것은 실은 정정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 정정하는 경험을 판다.
- 이 장의 정리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정정하는 힘을 사유하는 인문학의 의의가 퇴색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새 사업을 창출할 가능성 품고 있다.
3장 친밀한 '공공권' 만들기
정정하는 힘을 인생에 응용하는 방법
- 시사, 이론, 실존
사상은 이론만으로 힘을 지니지 못한다.
- 정정하는 힘은 경영의 철학이다.
변치 않고 같은 꿈을 꾼다고 믿으면서 회사는 계속 변화하기
- 사장 교체라는 '정정'
- 토크 이벤트를 발견하다
처음에는 생각 못한 일 지금은 하게 되었고, 지금 같은 생각 갖게 된 것.
지금은 하게 되었고, 지금 같은 생각 갖게 된 것
- 고유 명사가 되어라
직업이나 직책같은 속성으로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성을 뒤어넘는 누군가'로 판단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 잉여 정보를 만든다.
이 작가가 운영하는 '겐론 카페' 괜찮은 듯.
중요한 것은 '잉여 정보' .
주어진 일을 하고, 상대방이 기대하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는 당신을 고유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 기대와 무관한 영역에서 상대방이 교환 불가능한 존재라고 여기게 하기.
애초에 사람은 누구나 교환불가능한 고유한 존재다. 평소에는 느끼지 않을 뿐!
주변에 '잉여정보'의 장을 만드는 것.
이를 위해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 이것이 정정의 지렛대가 되어준다.
- 교환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 '정정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자기를 속성으로 판단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결코 풍요로워질 수없다.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신자만 있어도 답답하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사실...였다'는 형태로 몇 번이고 재발견해주는 '정정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 신자가 모이는 것을 피한다.
정정하려면 '잉여정보'가 필요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며 시행착오를 받아들이는 신뢰관계가 필요하다.
친밀한 관계를 친밀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키워가는 수단 생각하기. 이게 가능할 때 정정하는 힘은 사회 바꾸는 힘으로 변한다.
- 조직을 만든다.
인간의 관계성. '기관없는 신체'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전체를 위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가 개체인 채로 즉흑정으로 모였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모이는 '조직없는 운동'이 이상적이다.
- 조직과 동원
조직 없는 운동, 참가자격 묻지 않고 이데올로기도 정해져 있지 않고, 일부러 조직 만들지 않는다.
조직이 있어야 실은 우리가 해야 했던 것은...이 아닐까 하는 정정의 힘이 발휘된다.
- 루소의 연극부정론
사회학에서 친밀권과 공공권이라는 대립으로 세상 본다.
정정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친밀한 공공권이라고 불릴만한 양의적 존재다
- '서클'이 무너진다.
서클, 친밀한 공공권이 무너진다고 연극도입을 반대했다. 정정하는 힘이 가능하려면 친밀한 공공권 재건해야 한다.
- 폐쇄적/ 개방적이라는 대립은 무의미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폐쇄적/ 개방적이라는 판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정정하는 힘이 작용하는지, 사람을 고유명사로 여기는지가 더 중요하다.
-' 귀염성'의 힘
'귀염성'을 획득하면 예상과 다른 행동이나 발언을 해도 그냥 받아들여진다.
고유명사가 되면 교환불가능성으로 해서 고통받을 수 있다.
- 교환 가능성과 정정 가능성
인간은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간다.
교환가능성 높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신체 자체가 교환불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해야 한다. 자기를 '체인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정정하는 힘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