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나의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꽃이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리석은 시절을 흔들며 어머니 시들어가는 시절에 나는 머릿속에 커다란 구름이 꽉 들어차고 있음을 느꼈다. 몽매한 시간도 이제는 더 남지 않고 흘렀지만 이따금 시절을 버린 꽃을 떠올린다.
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썼다. 두고두고 꽃을 보면 그는 납작광적처럼 한쪽으로 쏠려버린 어머니, 살아 아프던 기억의 눈동자를, 어머니 입에 넣어주고 싶은 대추알만큼, 없는 것 헤집으며 허전하였다, 허전하였다고 읊을 것이다.
이 책이 내게 왔을 때, 나는 스물다섯 개의 방들이 따닥따닥 붙은 한 평짜리 방에서 아기에게 줄 젖을 짜고 있었다. 밤새 뭉친 젖무덤을 주무르며 울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주술을 걸었지만,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고 소식조차 배달되지 않았으며, 검은 얼굴의 그가 낡은구두가 되어 너덜해진 채로 드문드문 방문을 열었다. 그는 어머니와 아기의 방을 오가며 울고 웃었지만, 나는 알았다. 어머니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많은 후회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지, 후회를 후회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그가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지, 나는 알았다. 그러므로 유축기 한쪽에 놓여진 이 책은 그가 마음으로 건넨 책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나의 어리석음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 살아지는 것처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어오르는 새벽의 엄마'라고 명명된 고생대의 흔적처럼, 한 천년쯤 흐르면 우리가 있었던 한 시절이 보일까. 드러날까. 알베르 코엔의 '내 어머니의 책'을 빌어 벌받는 자세로 어머니를 기억하는 내가 산다. 부디 코엔이 그러했던 것처럼 박해와 멸시를 이기고 살게 하신 어머니의 이름으로 당신이 빗장을 풀고 나온다면, 그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 한자락 열어준다면, 나도 그렇게 어머니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길고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