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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그리고...』
  • KN의 비극
  • 다카노 가즈아키
  • 10,800원 (10%600)
  • 2013-06-14
  • : 550

 누군가가 ‘무조건 닥치고 이 작가의 책은 꼭 읽어야 해!’ 라고 말한다면, 저마다 나도 그런 작가가 있다고 끄덕이는 동시에 떠올리는 작가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도 그런 작가가 몇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열정은 좀 식었다. 단순히 ‘식었다’기 보다는, 특정 작가에 대한 열정이 다양한 이야기를 찾는 열정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특정 작가에 치우치지 않고 그저 기회가 닿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마구 읽어 해치우는 스타일로 바뀌어 간 것이다.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선호하던 작가가 내놓는 작품들이 이전의 작품과 추구하는 스타일이 비슷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 이유로 계속해서 특정 작가를 찾고는 하지만, 지루함을 금방 느끼는 나로서는 그게 그 작가를 찾지 않게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나도 여전히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찾게 되는 작가가 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 그의 어떤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작가. 물론, 당연히 그 작가는 ‘다카노 가즈아키’이다.

 

 『K N의 비극』은 지금까지 와의 다카노 가즈아키가 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그가 전하는 사회를 향하는 날카로운 목소리(당연히 매번 바뀌는 것이고!)는 여전히 작품의 중심에 있다. 이번에는 임신과 중절이라는 소재로 사랑(남녀 간의 사랑이든, 자식에 대한 사랑이든!)을 ‘무섭게’ 보여준다. 그렇다. 사랑인데, 그 사랑을 공포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보여준다.

 

 옆집에서 나는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난처한 방이 있던 낡은 아파트에서 1년 반 남짓한 신혼생활을 하던 ‘슈헤이’와 ‘가나미’의 이사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재판을 찍는다는 알림을 받고, 어마어마한 인세가 통장에 찍히고, ‘슈헤이’에게 각종 매체로부터 끊임없이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 이유는 그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새로운 맨션으로 이사할 수가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새로운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밖에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가나미의 임신에 중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이 부부에게는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된다.

 

 문 너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가 버린 건가 하고 문구멍에 눈을 가져다대자 여자의 머리칼이 나부끼더니 재빠르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똑똑 하는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군지 알아?” -P67~8

 

 “내가 누군지 알아?” 라는 질문에 마주하는 ‘슈헤이’를 그려보며 순간 오싹해졌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낯선 여인이 던지는 “내가 누군지 알아?” 라는 질문 그 자체가 괜히 무서웠다. 평소 같으면 그저 장난 같은 이 한 마디가 아무렇지 않게 들렸을 텐데…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뭔가 무섭다고 느낀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저 당연히 미스터리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갑작스럽게 다가온 음울하고 낯선 분위기가 나를 오싹하게 만든 것일까?! 생각지도 않게 두려움과 무서움이 감도는 소설과의 만남이었다. 이런 무더운 날씨에 더 없이 좋은 시간들이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한 호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다카노 가즈아키를 모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상당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깔고 있으니까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카노 가즈아키는 단순히 공포를 공포로 놔두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한없이 조여오던 공포가 순식간에 경외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은 《13계단》을 시작으로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제노사이드》, 《그레이브 디거》까지, 그 어느 하나도 나의 선택을 후회했던 적이 없었다. 『K N의 비극』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제노사이드》로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독자라면 아쉬움이 생길법도 하다. 《제노사이드》가 워낙 대작이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제노사이드》보다 먼저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읽었기에, 자연적으로 기대감이 낮아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쉬움 보다는 또 다른 스타일의 다카노 가즈아키를 만날 수 있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뭐 툭 까놓고 말해서, 이미 10년 전에 나온 소설인데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거 아닌가?! 단지 국내에 출간된 시기가 늦어져서 그런 것이지 뭐…) 굳이 이런 즐거움이 아니더라도 이 책 자체의 가독성만 따져도 충분히 추천할 만 하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듯이, 기본적으로 좋은 작품은 잘 읽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런 작품 중에 하나라는 사실! 날카로운 메시지(10년이라는 시간이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나…)를 기본으로, 막힘없이 읽히고, 그 속에 빠진 독자들을 빠르게 다음 또 다음으로 흘러갈 수 있게 만드는 소설이라면 그 누구나 읽어도 결코 후회 없는 선택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언제부터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역시 ‘다카노 가즈아키’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그의 어떤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작가’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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